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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륜스님의 행복한 출근길

    Posted on : 2009-06-18 | By : SON BYOUNGMOK | In : 손병목의 독서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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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륜스님 하면 곧 즉문즉설이 떠오릅니다. 즉문즉설(卽問卽設), 묻는 대로 곧 답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언제든 명쾌하게 답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은 웬만한 내공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깨달음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공부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답을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답에는 울림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울림은 나의 언어가 아니라 상대의 언어로 표현할 때 생깁니다. 그것은 깨달음의 문제보다는 전달력의 문제입니다. 석가모니 세존이 즐겨 썼던 방편(方便)이 곧 이것입니다. 대기설법(對機設法)이라고도 하구요.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깨달음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것을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표현하는 것, 그것이 곧 석가모니의 방편이며,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입니다.

    <행복한 출근길>은 직장인을 위한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입니다. 책으로 엮었으니 이미 즉문즉설은 아니지만, 직장인들이라면 누구나 가졌을 법한 고민들이 주제에 대한 답이 들어있습니다.

    속세의 고민에 스님이 답을 합니다. 일반적으로 성자(聖者)인 스님의 답은 속(俗)의 언어로는 이해가 될 듯 말 듯, 멉니다. 대개 그러합니다. 그러나 법륜스님의 답은 포장마차에서 술 한잔 걸치며 듣는 선배의 진심 어린 충고마냥 가깝습니다. 속(俗)의 물음에 성(聖) 언어로 답하지 않습니다.

    정토회를 이끄는 법륜스님의 명성이야 이미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스님의 약력을 보며 깜짝 놀랐습니다. <실천적 불교 사상>, <인간 붓다, 그 위대한 삶과 사상>, <젊은 불자들을 위한 수행론>, <우물에서 바다로 나간 개구리> 등이 있었습니다. 이들 책은 제가 대학생 시절 한때 세상 고민을 다 안고 다니던 시절, 줄을 그어가며 저의 번뇌를 해결하고자 했던 그 책들입니다. 그때는 스님이 아마 출가 전이었나 봅니다. 최석호라는 속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알지 못했나 봅니다. 20년 가까이 잊고 있었던 그 책을 다시 꺼내 보았습니다.

    부처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는 비굴하지 말고 당당해라. 그리고 너희는 교만하지 말고 겸손하라.”
    비굴해서도 안 되고 교만해서도 안 됩니다. 바로 당당하되 겸손해야 된다는 말씀이지요. 당당하라는 것은 내 주체를 상실하지 말라는 말씀이며 겸손해야 함은 타인의 당당함, 그 주체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젊은 불자들을 위한 수행론> p.69)

    그 시절, 그렇게 줄을 그어가며 읽었듯 <행복한 출근길> 역시 마음에 새기며 읽었습니다. 줄을 그으며 읽은 몇 구절만 옮깁니다.


       제   목 : 행복한 출근길
       지은이 : 법륜스님
       펴낸곳 : 김영사 / 2009.4.22 초판 발행, 초판 1쇄를 읽음  ₩10,800


    똑같은 일을 해도 돈 내고 하면 놀이고, 돈 받고 하면 노동입니다. 우리는 노동 따로 놀이 따로 합니다. (…)

    제가 저한테 와서 상담하는 사람을 다 고쳐 줄 수 있다고 생각했으면, 상담 못하지요. 왜냐하면 상담하러 오신 분들이 제 말을 듣기보다는 자기 고집을 부리는 경우가 많거든요. (…) 듣고 안 듣고는 그 사람의 문제고, 받아들이고 안 받아들이는 것도 그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저에게 물어왔기 때문에 저로서는 최선을 다해서 얘기하는 것입니다. (p.84~p.87)

    상담하는 것이 좋아 자격증까지 따서 상담일을 하고 있는데, 청소년을 상담하는 일이 너무 힘들다는 어느 상담사에게 한 말인데, 학부모 상담을 하고 있는 저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또 이런 말도 합니다.

    힘들다, 힘들다 하면서도 직장을 계속 다니는 이유는 아직까지는 견딜 만하고, 자기에게 유리한 것을 아직 붙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직장보다 나은 것을 잡기가 어렵고 비슷한 것을 잡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그냥 다닙니다.
    사람들이 괴로워 죽겠다고 말합니다. 그럼 “기도하세요.”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기도는 하기 싫어요.”합니다. 아직 살 만하기 때문입니다. 괴롭기는 하지만 수행하고 기도까지 해 가면서 이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지는 않다는 겁니다. 아직 괴로워할 만하다는 거예요. (p.69~p.70)

    심각한 고민에 대한 답인데, 전 이 부분을 읽다가 웃겨 죽는 줄 알았습니다. 스님 말씀이 맞죠. 백번 천번 옳은 말씀입니다.

    수행이라는 것은 다 자기 문제입니다. 남을 고쳐서 자기에게 맞추려고 하면 그것은 수행이 아닙니다. (p.172)

    오늘도 행복한 하루 만들어 가세요.

    과학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Posted on : 2008-06-17 | By : SON BYOUNGMOK | In : 손병목의 독서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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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국민들이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 과학적 사실을 좀 더 배우길 희망한다.”

    얼마전 버시바우 주한미국대사의 말입니다. 이 말은 촛불의 갯수를 엄청나게 증폭시켰습니다.
    버시바우의 말은 미국 쇠고기를 먹고 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40억분의 1이니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뜻입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곧 광우병 발병이라는 것은 과학적 무지의 소치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정말 과학에 무지한 것일까요? 그렇다면 이미 30개월 이상된 쇠고기를 절대로 수입하지 않고 있는 대부분의 나라들은 또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한쪽에서는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성을, 또 한쪽에서는 안전성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 논란의 중심에는 ‘과학’이 있습니다. 근거가 과학적이지 못할 때는 한낱 구호나 주장에 불과하니까요.

    그런데 ‘과학’이란 것이 대체 무엇일까요? 과학이 이토록 모든 판단의 최종 권위를 가져도 되는 것일까요? 과학에 무슨 특별한 것이 있길래 과학 없이는 설득이 불가능한 것일까요?


       제   목 : 과학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쿤 & 포퍼 <지식인마을 25>
       지은이 : 장대익
       펴낸곳 : 김영사 / 2008.6.9 초판 발행, 초판 1쇄를 읽음  각권 ₩9,500


    지식인마을 시리즈 25권 <과학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의 주제가 바로 이것입니다. 과학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과학이 이토록 권위를 가져도 되는 것인가? 과학과 종교는 양립할 수 없는가?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 책의 주제는 ‘과학’이 아니라 ‘과학철학’입니다.

    이야기를 재미있게 이끌기 위해 두 주인공을 내세웠습니다. <과학혁명의 구조>를 쓴 토머스 쿤,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을 쓴 칼 포퍼가 그 주인공입니다.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과학에는 무언가 특별한 ‘방법’이 있으며, 과학자들이란 그런 ‘방법’을 따르는 사람들이라고 믿는 부류가 있습니다. 흔히 3단 논법이라 불리는 귀납주의를 주장한 베이컨, 반면 과학에는 귀납 추론이 필요 없다고 주장한 ‘반증주의’의 칼 포퍼 등입니다. 귀납주의와 반증주의의 논쟁, 혹은 귀납주의의 극복 방법 등이 과학의 주제였을 때, ‘다 거짓말아야~’라고 외치며 나타난 이가 있으니 그가 바로 토머스 쿤입니다.

    토머스 쿤은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실제 과학은 절대로 포퍼의 순진한 생각처럼 진행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과학혁명은 논리적인 절차가 아니라 과학자들의 심리 상태에 더 크게 의존했다고 말합니다. 더구나 그 혁명이 꼭 진보적인 변화라고 볼 수도 없다고 말합니다. 지금까지 논의된 모든 것들을 완전히 부정합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과학은 ‘패러다임’에 기반을 둔 활동이다. 지금은 널리 쓰이는 ‘패러다임’이라는 말은 토머스 쿤의 전매 특허입니다.

    이 정도의 표현만으로는 토머스 쿤의 말이 왜 그리 혁명적인지 느끼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쿤의 이 말은 논리적 절차로는 과학과 비과학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과학자의 관찰이 그리 객관적이지 않다는 말입니다. 과학의 역사는 도그마(독단,독선)의 역사였다고 말합니다. 그 도그마에 빠져있는 기간을 ‘정상(normal) 과학’이라고 말합니다. 그 도그마가 깨질 때 ‘과학 혁명’이 일어납니다. 도그마에 빠져있는 기간을 ‘정상’이라고 부르는 이 용기!

    하나의 패러다임이 지배할 때는 어지간한 변칙 사례들에 대해서는 꿈쩍도 안 합니다. 이 시기의 과학자들은 <수학의 정석>의 예제와 유제, 연습문제만 열심히 푸는 시기입니다. 그러다가 변칙 사례가 많아져 ‘심리적’ 위기가 오고, 대안이 등장하면 패러다임이 교체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아닙니다. 타이타닉이 가라앉더라도 마지막까지 남는 선장이 있듯이, 패러다임은 이런 고집스런 사람이 실제로 죽어나갈 때라야 교체된다고 말합니다.

    이 외에도 책에는 포퍼와 쿤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 사람(라카토시), 포퍼와 쿤에게 모두 반기를 들고 모든 과학에 통용될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네 맘대로 하세요’라고 주장하는 사람(파이어아벤트), 과학도 결국은 협상이라는 사회구성주의자들도 소개되어 있습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그렇다면 과연 과학이란 무엇일까요? 과학이 과연 ‘과학적’인 걸까요? 과학에는 과연 특별한 그 무엇이 있을까요?

    책을 다 읽고 영화 <콘택트>를 보았습니다. 책 말미에 영화 <콘택트>의 대사가 짧게 수록되어 있는데, 과학이란 무엇인지 깊게 생각하게 만드는 말인 것 같아서였습니다. 영화 <콘택트>를 보고,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주문했습니다. 너무 두툼해서 감히 끝까지 읽어볼 수 없을 것 같은 이 책은, 영화 <콘택트>를 너무 감명 깊게 봤기 때문입니다. <콘택트>는 칼 세이건의 동명 소설을 영화한 것입니다.

    <과학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읽는 내내 참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장정일 삼국지 (2)~(10)

    Posted on : 2008-06-16 | By : SON BYOUNGMOK | In : 손병목의 독서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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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서유감으로 찾아뵌 지가 참 오랜만입니다. 올 6월 들어서는 처음이네요.
    바쁘기도 했지만 몸도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이른 시간 짬을 내어 글을 쓰기보다는 약간의 여유를 즐기려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여러 이유로 근 한 달만에 독서유감을 다시 시작합니다. 앞으로 자주 찾아뵙겠습니다.

    짬짬이 <장정일 삼국지>를 읽었습니다. 어느새 10권을 모두 읽었습니다. 삼국지를 여러 번 읽을 필요가 있느냐에 대해서는 사람들마다 생각이 다릅니다. 자랑 삼아 삼국지를 열 번 읽었다는 사람도 있는 반면 삼국지는 두 번 읽을 가치조차 없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둘 다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누구에게는 형편없는 영화라도 어떤 이는 대사를 욀 정도로 보고 또 본 영화가 있듯이 삼국지도 그러합니다.


       제   목 : 장정일 삼국지 (2)~(1) <문고판(HAND IN HAND LIBRARY>
       지은이 : 장정일
       펴낸곳 : 김영사 / 2008.5.1 초판 발행, 초판 1쇄를 읽음  각권 ₩5,500


    만약 삼국지를 다시 읽으려면 시차를 좀 길게 두고 읽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최소한 몇 년의 간격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 다시 읽을 때 새로운 시각에서 볼 수 있으니까요. 처음에는 줄거리를 기억하기조차 벅찹니다. 적어도 두 번 세 번 읽어야 줄거리에서 인물로 시선을 옮길 수 있습니다.

    이번에 읽을 때는 유독 제갈량에게 관심이 쏠렸습니다. 삼국지를 처음 읽을 때 제갈량에 관심이 쏠렸다가 몇 번을 읽으니 조조에게 관심이 넘어갔다가 이번에 다시 제갈량으로 돌아왔습니다.  주군보다는 참모에 더 관심이 갑니다. 이상하게도 유비나 손권 따위에는 큰 관심이 없습니다.

    제갈량이 평생을 바친 유비와 그의 촉한에는 참 인재가 없었습니다. 흔히 오호대장군이라 불리는 관우와 장비, 조운과 황충, 마초와 제갈량 사후에 군권을 맡았던 강유 정도가 전부입니다. 게다가 황충은 조조 밑에서 그리 중하게 쓰인 인물이 아니었고, 강유도 위나라 변방의 한 장수에 불과했습니다. 그런 이들이 촉에 가서는 아주 중하게 쓰입니다. 조조가 인재를 못 알아봤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위나라에는 인재가 넘치고 촉은 부족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인재가 귀하다보니 촉의 거의 모든 일은 제갈량에게 집중됩니다. 내치부터 군사를 부리는 일까지 도맡아 하게 됩니다. 전장에서조차 20대 이상의 태형에 해당되는 죄수를 직접 문책할 정도로 잡일이 많았습니다. 잡무로 인해 밤늦도록 잠을 잘 이루지 못하고 끼니를 거를 때도 많았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사마의는 제갈량이 오래 살지 못할 거라고 확신을 합니다.

    제갈량의 마지막 북벌 때 사마의는 거의 죽을 뻔했습니다. 제갈량의 계책에 속아 사마의 3부자가 산속에서 모두 불에 타 죽을 뻔했습니다. 그때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집니다. 그때 제갈량이 탄식하며 말합니다.
    “일은 사람이 꾸미지만 성공 여부는 하늘에 달려 있으니 어쩔 수 없구나(某事在人 成事在天 不可强也)”
    모사재인 성사재천(某事在人 成事在天)이라는 말은 여기서 유래되었습니다.

    그 후 갑자기 지병이 깊어져 제갈량은 오장원에서 최후를 맞습니다. 제갈량의 사인을 흔히 현대의학에서 말하는 폐결핵이라고 합니다. 얼굴은 희고 입술이 유난히 붉었으며, 이를 가리기 위해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기력이 쇠해 전장에서도 말을 타지 않고 사륜거를 탔으며, 죽을 때 피를 토했다는 정황을 들어 폐결핵이라고들 합니다. 고우영의 삼국지에도 그런 식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제가 보기에는 과로사입니다. 인재가 부족한 나라에서 너무나 많은 일, 너무나 많은 고민을 짊어져야 했습니다. 젊은 시절 그와 함께 전장을 누볐던 모든 이들이 저세상으로 가고, 유비의 늦둥이 어린 황제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 많은 일들을 홀로 처리해야 했으니 그 누군들 버틸 수 있었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천자를 옆에 두어 명분을 얻고 인재를 고루 등용하여 통일의 기반을 마련했던 조조에게 관심이 더 갔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선택한 주군을 위해 평생을 바치고, 2세 황제를 위해서도 몸을 아끼지 않다가 천명을 다 못 누리고 간 제갈량에게 더 마음이 쏠리는 까닭은 왜일까요? 조조가 죽자 제갈량을 죽인 군벌 사마씨들이 실권을 잡아 결국 사마씨의 의해 삼국이 통일됩니다. 유비가 죽자 사마씨와 마찬가지로 제갈량이 실권을 장악하지만 그는 유씨를 위해 마지막까지 충성을 다합니다.

    삼국의 역사는 비록 위-진의 통일로 마무리되지만 <삼국지연의>는 삼국 중 가장 먼저 패망한 촉한을 정통으로 삼아 씌어졌습니다. <삼국지연의>의 작자 역시 제갈량에게 끌리는 제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나 봅니다.

    장정일 삼국지 (1) 황건기의

    Posted on : 2008-05-19 | By : SON BYOUNGMOK | In : 손병목의 독서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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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영화 <용의 부활>은 <삼국지>를 영화한 것입니다. 그러나 <삼국지>를 재현한 영화라고 생각하고 보면 실망을 금할 수 없습니다. 영화에는 <삼국지>의 주인공들이라 할 수 있는 유비, 조조, 손권은 아주 잠깐 등장하거나 아예 모습을 보이지 않습니다. 제갈량도 잠깐 등장합니다. 관우와 장비도 마찬가지. 정작 이 영화의 주인공은 ‘조자룡’입니다. 따라서 이 영화는 <삼국지>가 아니라 ‘조자룡전’이라 해야 어울립니다.

    저는 재미있게 봤습니다. 머리를 희끗하게 분장한 유덕화의 모습도 새롭고, 무엇보다 늘상 바라보던 방향이 아니라 전혀 다른 각도에서 <삼국지>를 바라보니 신선했습니다. 영화는 구름과 함께 시작합니다. 뭉게뭉게 구름이 떠오르고 흘러갑니다. 아마 조운의 운(雲)을 뜻한 것 같습니다. 곧이어 상산 출신 조자룡은 유비군 진영에 자원 입대합니다. 거기서 동향 출신으로 큰형(大哥)이라고 부르는 홍금보를 만나게 되고, 영화는 시종일관 이 둘의 시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불패장군이라는 별명답게 조자룡은 평생에 걸쳐 단 한 번도 진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조조의 손녀 조영에게 패하고 맙니다. 통상 알고 있는 <삼국지>에서 큰 줄거리는 빌려왔되 이처럼 새롭게 그리고 있는 부분이 많습니다. <삼국지>라면 원전만이 최고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이 영화를 본다면 ‘이게 무슨 삼국지야’라고 말할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아는 <삼국지>는 여러 ‘판본’이 존재하는 픽션인데도 말입니다.

    영화 <용의 부활>의 주된 배경은 유비, 조조, 손권 등 <삼국지>의 주인공들이 사라지고 그들의 2,3세가 각축을 벌이는 시기입니다. 천수를 다한 조자룡이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시기를 무대로 그리기 때문입니다. 전장에서 평생을 보낸 조자룡은 죽음을 맞이할 봉명산에서 무언가를 깨닫습니다. 그곳은 그가 처음 유비군에 자원 입대했던 곳입니다. 어쩌면 인생은 커다란 원을 돌아 제자리로 오는 것이 아닌가하는 것이 이 영화가 주는 암시입니다.

    오늘의 리뷰 주제는 <용의 부활>이 아닙니다. <삼국지>의 또 다른 판본, <장정일 삼국지>를 말하고 싶습니다. 최근에 문고판이 나와 가볍게 읽고 있습니다.

    영화 <용의 부활>이 ‘여러 장수들 중의 하나’였던 조자룡을 이야기의 중심으로 끌어냈듯, <장정일 삼국지>는 기존의 <삼국지>에서 엑스트라에 불과했던 이들의 심리를 거의 조연 또는 주인공처럼 그리고 있습니다. 장정일은 <삼국지>를 역사로 보기보다는 철저하게 소설로 보고 있습니다. 역사적 ‘교훈’을 얻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을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서문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새로’ 썼습니다. <장정일 삼국지>에서는 유비도, 조조도, 손권도 우리편이 아닙니다. 혹자는 유비 중심의 <삼국지>를, 또 누구는 조조 중심의 <삼국지>를 선호할 수 있겠지만 <장정일 삼국지>는 그 누구도 주인공으로 삼지 않습니다. 중국인의 눈으로 본 <삼국지>는 이미 많이 나와 있으니 굳이 장정일이 새로 쓸 필요가 없었을 테니까요.


       제   목 : 장정일 삼국지 (1) 황건기의 <문고판>
       지은이 : 장정일
       펴낸곳 : 김영사 / 2008.5.1 초판 발행, 초판 1쇄를 읽음  ₩5,500


    제1권 <황건기의>는 거의 ‘동탁전’입니다. <용의 부활>이 ‘조자룡전’이라면 <장정일 삼국지> 제1권 <황건기의>는 ‘동탁전’입니다. 원전(?) <삼국지>에서 탐욕하고 어리석은 장수로 황제를 억압하여 권세를 잠깐 누리다가 사라진 변방의 장수였던 동탁이, 여기서는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동탁의 심리묘사가 중립적입니다. 모든 인간이 그러하듯 양면성을 고루 그리고 있습니다. 동탁과 그의 사위이자 참모인 ‘이유’의 활약상을 비교적 많은 분량을 할애하여 그리고 있습니다.

    ‘황건적의 난’은 누런 머리띠를 두른 도적떼들의 반란으로 그리지 않고 ‘의로움으로 일어선’ 민중 봉기 성격을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제1권의 제목이 <황건기의>입니다. 유비는 결코 유약하지 않습니다. 그는 ‘전술가’입니다. 뭐도 없는 환관이 나라를 망쳤다는 식의 서술이 아니라 후한말에 왜 환관이 등극하게 되었는지 역사적 배경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흔히 악당 10인방을 그려지는 10명의 환관 ‘십상시’를 무작정 나쁜 인물들로 묘사하지도 않습니다.

    이쯤 되면 기존의 <삼국지> 독자들은 혼란스럽습니다. 도대체 뭐가 ‘진짜’인가?

    ‘진짜’는 없습니다. <삼국지>는 원래부터 소설입니다. 구전된 소설을 누군가가 글로 적은 것이고, 그 중에서 나관중이 쓴 판본이 유명할 따름입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역사적 왜곡과 편향된 해석이 가득 차 있습니다. 진수의 <삼국지>(이건 역사서입니다)와 비교해볼 때 소설 <삼국지(삼국지연의)>는 7할이 허구입니다.

    장정일은 <삼국지>를 제3국인의 눈으로 쓰겠다고 서문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삼국지>에 자주 등장하는 동호(東湖), 즉 고구려계 사람들의 눈으로도 보고, 중원이 아닌 변방의 장수들의 눈으로도 봅니다. 중국인들의 눈으로 보면 변방 장수의 운명이 우리의 운명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권에서 동탁을 다시 살려냈습니다. 황건적의 우두머리 장각을 고뇌하는 민중봉기의 지도자 장각으로 다시 그리고 있습니다.

    재미있습니다. 새롭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진짜’ <삼국지>에 대한 향수를 버리지 못한 분이라면 혼란스러울 것입니다. 똑 부러지게 선악을 구분한 이분법적인 사고를 강요하는 기존의 <삼국지>에 익숙한 독자에게 <장정일 삼국지>는 죽도 밥도 아닙니다. 그래서 다른 <삼국지>에 비해 흥행이 덜 됐나 봅니다. 새로운 해석보다는 아직은 ‘원조’가 중요한 시대인가 봅니다.

    엄마학교

    Posted on : 2008-05-07 | By : SON BYOUNGMOK | In : 손병목의 독서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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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 노릇을 배워야 한다는 것을 처음에는 특별한 듯 이야기했습니다. 지금 제게는 매우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집니다. 배우지 않고서 어떻게 제대로 부모 노릇을 할 수 있는지 오히려 반문합니다. 여러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하고 책을 읽으며 부모 노릇이 결코 쉽지 않음을 느꼈습니다. 배우지 않고서는 방법이 없습니다.

    자녀와 나, 가족, 공교육과 사교육 사이의 매끄러운 소통을 위해서는 부모가 먼저 그 관계를 깨쳐야 합니다. 나와 자녀 사이에 오가는 말이 진정한 소통을 위한 말인지 아닌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반사적으로 하는 말 대부분이 의사소통을 오히려 방해한다는 사실을 알면 말 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렇다고 주눅이 들 필요도 없습니다. 아이에게도 겸손한 마음이 필요합니다.

    자녀교육에 관한 모든 것을 마치 수학 공식 외듯 외운다고 해결될 일도 아닙니다.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원리를 깨닫고 그것을 겸손하게 실천하면 됩니다. 그 원리는 생각보다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상식에 가깝습니다.

    부모교육의 산 역사라고 할 수 있는 이민정 선생님을 만나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배우는 부모’들이 많이 있고, 또 그런 실천을 통해 ‘실제로’ 관계가 변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매우 중요한 발견이자 깨달음이었습니다.

    늘 곁에서 함께해왔던, 학습법과 입시지도를 전문으로 하는 박재원 소장님을 만나 중요한 사실을 알았습니다. 부모들의 초미의 관심사인 자녀 공부의 성패도 그 출발은 결국 ‘부모와 자녀의 정서적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교육운동가 김정명신님을 만나 이야기를 하다가 중요한 깨달음을 하나 얻은 게 있습니다. 부모가 ‘불안’해하는 순간 제대로 된 교육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토마스 고든의 책을 읽고 ‘부모역할훈련’의 근본적인 원리를 알았습니다. 하임 기너트와 존 가트맨의 책을 읽은 후 아이들의 ‘감정’은 받아 주고 ‘행동’은 고치는 방법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오랫동안 사교육을 지켜보거나 직업으로 대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사교육은 결코 공교육을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을. 공부의 주체는 결국 ‘학생’이라는 것을.

    지금 제 삶을 움직이는 화두는 자녀와 부모 사이의 ‘소통’과 ‘교육’입니다. 자녀를 둔 부모로서 최대의 관심사이자 제 생활을 유지해주는 업(業)이기도 합니다. 아주 운이 좋은 편입니다. 개인적인 관심사와 밥벌이 수단이 같으니 말입니다^^

    부모/자녀교육서를 읽는 것은, 그래서 취미인지 업무의 연장인지 이미 그 경계가 없습니다. 최근에 읽은 책 한 권을 추천합니다.


       제   목 : 엄마학교
       지은이 : 서형숙
       펴낸곳 : 큰솔 / 2006.9.15 초판 발행, 2008.1.14일刊 초판 14쇄를 읽음  ₩9,000


    서형숙님의 <엄마학교>라는 책입니다. 원래는 한살림 공동체 운동을 하면서 농업과 먹거리에 대해 글을 쓰고 강의를 해 오던 분이었는데 잘 자란 아이들 덕에 교육 강사로 더 유명해졌습니다. 참고로 딸은 고3 신분에 세계 잼버리 대회 운영 요원으로 20일 간 태국에 있으면서도 최고의 성적을 놓치지 않았고 연세대에 진학했습니다. 아들도 연세대에 입학했는데 전국 소년체전 육상 부문 금메달리스트이자 소년체전 신기록 보유자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아이들의 학력을 소개하니 좀 씁쓸합니다. 성공한 기준 중 여전히 중요한 것이 ‘학력’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 말입니다.

    그러나 책을 읽다 보면 오해는 금방 풀릴 것입니다. 내심 아이가 공부 잘하기를 바라는 것은 모든 부모들의 공통된 마음이지만, 결코 그것이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 그 분야에서 성공하듯이, 공부에 대해 별 거부감이 없는 학생이 오히려 더 잘하는 법입니다. 엄마는 아이에게 결코 공부를 강요하지도, 선행학습을 시키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교육은 아이가 가장 하고싶어 할 때가 제때다’는 생각으로, 너무 안 하려고만 하면 가끔 동기 유발을 시키기는 했지만 연연해하지는 않았습니다. 학원 수업보다는 다양한 경험이 우선이었고, 선행학습이 아니라 적기교육이 중요하다 믿어 실천했고, 공교육과 선생님을 믿었으되 부당한 체벌에는 진심 어린 마음으로 교사에게 그 뜻을 전했습니다.

    저자는 아예 ‘엄마학교’를 만들었습니다. (홈페이지:http://www.momschool.org) 아이가 성공하기를 바라고 자신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엄마 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생각에서 서울 종로 계동 북촌 한옥 마을 한쪽에 ‘엄마학교’를 열었습니다. 그 학교의 10계명이 곧 이 책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옮겨 보겠습니다.

    1. 삶의 목표를 정한다.
    2. 서두르지 않는다.
    3. 환한 웃음으로 대한다.
    4. 아이를 믿는다.
    5. 아이 스스로 하게 한다.
    6. 아이가 선택하게 한다.
    7. 남에게 해가 되지 않는 일이라면 뭐든지 하게 한다.
    8.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고하시는 분들이 있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
    9. 내 아이도 남의 아이도 우리 아이로 여긴다.
    10. 먹는 것에 신경 써서 아이의 건강을 돌본다.

    여러 자녀교육서를 읽어보셨다면 특별한 이야기가 없어 보입니다. 좋은 부모가 되는 법이 그리 특별하지는 않습니다. 결단과 실천을 요할 뿐입니다. 다만 이 책에서 좀 특별해 보이는 것은, 학교에 대한 이야기가 상대적으로 많다는 것입니다. 학교를 믿고 선생님을 믿어야 아이의 학교 생활이 즐겁다거나, 부적절한 체벌에는 단호하게 대처하라는 등. 정말 공감이 가고, 그렇게 해야 하는 것들입니다.

    기회가 되면 한 번 읽어보시고, 혹시 읽을 시간이 없으시다면 책 목차라도 꼭 읽어 보시길 바랍니다(목차보기☞클릭). 목차를 보시면 크게 ‘다정한’ 엄마 되기, ‘영리한’ 엄마 되기, ‘대범한’ 엄마 되기, ‘행복한’ 엄마 되기가 있는데, 제1장인 ‘다정한’ 엄마 되기를 보다 보면 모든 육아 서적을 보면서 느끼시는 것이겠지만 “누가 모르나? 그게 얼마나 힘든데….”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가 성공하고 나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란다면 결국은 이 단계를 넘어서야 합니다. 서두르지 않고, 아이가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하게 만들려면 결국은 기다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가장 어려운 일이지만, 이것보다 더 나은 방법은 없어 보입니다. 학원 수업에만 익숙해져서 스스로 공부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많이 봐왔습니다. 공부를 포함해서 아이의 삶이 그렇게 수동적이길 바라는 부모는 어디에도 없을 것입니다.

    세상사를 두루 겪은 성인이 만나 질기게 연애를 하고도 결혼 생활에 익숙해지는 데에는 몇 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물며 태어나서 처음으로 새 생명을 낳은 부모와 모든 것이 처음인 아이, 그 초보 부모와 아이의 관계를 극복하고, 수십년의 시간적 정신적 차이를 극복하여 관계를 형성하는 데에 진통이 없을 수가 없겠지요. 배우지 않으면 안 되겠지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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