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따뜻한 부모가 될 수 있도록 돕습니다. 현명한 학부모가 될 수 있도록 돕습니다.
  • 글도 쓰고 강연도 합니다.
  • 제 트위터는 @itmembers, 페이스북은 www.facebook.com/itmembers입니다.
  • 네이버 블로그는 charen.kr입니다. 최신 글은 네이버 블로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 요즘 중국차에 푹 빠져 있는데, 중국차에 대한 얘기도 네이버 블로그에서 전해드립니다.
  • [경향신문 칼럼 마지막회] 부모 역할을 즐기자

    Posted on : 2010-12-30 | By : 손 병목 | In : 신문잡지 기고

    태그:, ,

    1

    경향신문 2010년 12월 28일 화요일 22면 손병목의 학부모 마음 읽기 (마지막회)

    [원고 원문] 부모 노릇을 즐기자

    오늘이 마지막 칼럼이다. 1년 동안 학부모 노릇에 대해 많은 말을 했다. 나 스스로 완전하지 않음에도 만인을 향해 바른 소리를 하려니 많이 부끄러웠다. 그러나 일상이 수행의 연속임을 감안하면 이 글 또한 나와 독자 모두가 한번쯤 쉬어갈 수 있는 시간이 되지 않았을까 스스로 위로하며 그간의 이야기를 정리하고자 한다.

    많은 주제를 다루었지만 결국 핵심은 자녀로 인해 고통 받지 말고 자녀와 함께 나날이 행복해지는 연습을 하자는 것이었다. 우리 아이의 인생은 공부가 아니라 공부하는 과정에 형성되는 부산물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성적보다 중요한 것이 성격이라는 것이었다. 학창시절의 공부를 통해 누구는 실패를 두려워하게 되고 누구는 실패를 통해 배우는 아이로 자라게 된다. 누구는 성취감을 배우고 누구는 원죄처럼 공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평생 지고 간다. 누구는 공부하는 과정에서 부모와 마음의 벽이 높아지고 누구는 평생의 조언자로 부모를 섬긴다. 부모 역시 다르지 않다. 아이가 크는 동안 어떤 부모는 분노를 키우고 어떤 부모는 내면을 키운다.

    성격에는 좋고 나쁨이 따로 없지만 행복하게 살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자존감이다. 자존감 강한 아이로 자랄 수 있도록 돕기 위해 한 해 동안 가장 많이 사용했던 단어가 ‘공감’이었다. 공감은 대화의 기본이요 소통을 위한 근본 능력이다. 학습 지도 역시 소통 없이는 상호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부모로부터 공감의 유전자를 확실히 전수받지 않은 상태라면 누구나 처음에는 힘들다. 나 역시 대화의 첫 마디를 ‘아, 그렇구나!’로 시작하기가 왜 그렇게 어려웠는지 모르겠다. 긍정도 부정도 아니지만, 긍정보다 더 강력한 공감의 이 한 마디가 왜 그리 어려웠는지 모르겠다. 그 대상이 어른이든 아이이든 내가 옳고 상대가 그름을 증명하기 위해 참 많이 애를 썼으니, 생각해보면 그 끝은 늘 공허했고, 그것이 마치 승리인 양 여겼던 때가 있었으니, 부끄럽다.

    공감 다음으로 많이 강조했던 것이 ‘있는 그대로 보기’였다. 아이는 설득의 대상이 아니다.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게 만들고, 좋아하는 것을 통해 성취감을 느끼게 할 때 자존감이 비로소 완성된다. 있는 그대로 보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 역시 경청조차도 내 생각을 잘 전달하기 위한 방법쯤으로 인식했던 때가 있었다. 잘 들어주는 것이 내 말을 잘 듣게 만드는 지름길인 줄 알았다. 지난 일이지만 이 또한 부끄럽다. 대화를 통해 제일 먼저 드러나는 것은 견해 차이인데, 누구는 견해가 다르기 때문에 답답하거나 미워하는 마음이 들고, 누구는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이해하는 마음이 생긴다. 있는 그대로 볼 줄 아는 지혜를 터득하지 못하면 일상은 답답함과 화남의 연속이다.

    자존감은 선언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 줄 아니?’, ‘이게 다 네가 잘되라고 하는 것이야’, ‘자신감을 가져’, ‘너는 잘할 수 있어’, 이런 말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아이를 있는 그대로 볼 줄 아는 지혜와 거기에서 비롯된 공감의 기술만이 아이의 자존감을 키울 수 있다. 자존감은 스스로 살아갈 가치가 있다고 느끼는 ‘자기가치’와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의 합이다. 아이를 지극히 사랑한다고 해서 자존감이 커지는 것은 아니다. 내가 사랑하는 것보다 아이가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 더 중요하다.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만이 자기가치를 키우고, 스스로 선택한 것을 스스로 해낼 때만이 자신감이 커진다.

    음치가 음악을 가르칠 수 없고 물을 무서워하는 사람이 수영을 가르칠 수 없듯이 자존감이 약한 부모가 자녀의 자존감을 키우기가 쉽지 않다. 엄마의 행복이 자녀의 행복이라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일상의 경험을 통해 매일 느끼듯이 부모 노릇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부모 노릇은 분명히 어른의 역할이다. 아이에게 투정부리는 부모는 아직 어른이 아니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이 말뜻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결코 삶을 투정하지 않는다. 선택의 주어가 누구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행복해지기 위해 결혼했고, 행복해지기 위해 아이를 낳았다. 이제 행복해지는 노력만 하면 된다. 부모 노릇을 즐기자. 생각만큼 부모 노릇 ‘제대로’ 해볼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 하루하루가 힘겹게 느껴지다가도 가끔 돌아보면 시간은 어이없이 빠르게 흘러간다. 즐기기에도 부족한 시간, 투정부릴 시간이 없다.

    그동안 <손병목의 학부모 마음 읽기>를 아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우리 모두 아이와 함께 커가는 부모가 될 수 있기를 기원한다.

    자신에게 솔직할 때 성적도 오른다

    Posted on : 2010-12-21 | By : 손 병목 | In : 신문잡지 기고

    태그:, ,

    1

    경향신문 2010년 12월 21일 화요일 22면 손병목의 학부모 마음 읽기

    [칼럼 원문] 자신에게 솔직할 때 성적도 오른다

    고등학교 때의 일이다. 시험 날 아침이면 교실을 돌아다니며 공부 많이 했냐고 일일이 물어보는 아이가 있었다. 나도 슬쩍 친구에게 물어보곤 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제대로 공부했다고 말하는 녀석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다. 다들 어떤 이유 때문인지 공부를 제대로 못했단다. 이런 걸 꼬치꼬치 물어보는 녀석도 웃기지만 시험인데도 제대로 공부한 아이가 없다는 것 또한 이상하다.

    시험 날인데 하나같이 제대로 공부하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 이것은 ‘셀프 핸디캐핑’ 전략의 일종이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셀프 핸디캐핑을 풀어 쓰면 ‘제 무덤 파기’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스스로 단점이나 결점을 만드는 행위다. 자신을 자랑하기에도 모자랄 판인데 왜 스스로 깎아 내리는 것일까? 왜 아이들은 자신이 공부를 많이 하지 않았음을 강조하는 것일까? 시험을 망쳤을 때를 미리 대비하고자 함이다. 변명거리를 미리 만들어 놓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원래 이 정도로 못하는 사람은 아니다’는 것을 은연중에 드러내고 싶은 것이다. 제대로 했으면 더 잘할 수 있었는데 그만한 사정이 있어 못했다고 미리 변명거리를 만들어 두기 위함이다. 남들의 평가를 지나치게 의식하기 때문이다.

    아이가 정성껏 문제를 푼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답을 쓴다. 옆에서 지켜보던 엄마가 물어본다. “그거 답 맞니?” 아이는 엄마의 눈을 힐끗 쳐다보고 이내 답을 지운다. 엄마는 그저 답이 맞는지 물어봤을 뿐인데 아이는 지레짐작으로 답이 틀렸다고 생각한다. 엄마의 질문을 부정적 평가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초등학생 때야 부모가 아이의 문제집을 채점해 주지만 중고등학생이 되면 채점 역시 아이의 몫이 된다. 물론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이미 스스로 채점하는 아이들이 많다. 스스로 문제를 풀고 채점을 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런데 틀린 것도 맞은 것으로 채점하는 아이들이 꽤 있다는 것이 문제다. ‘이건 맞을 수 있었는데, 실수야.’ 이렇게 생각하고 답을 슬쩍 고쳐 쓴 뒤 동그라미를 친다. 자기 자신조차 속인다. ‘난 이런 것 정도는 맞힐 수 있는 사람이야’라고 위로한다.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지만, 그래도 틀린 게 많으면 안 된다.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나의 평가를 의식한 탓이다.

    아이가 물을 쏟았다. 걸레를 가져와서 닦을 생각은 하지 않고 엄마 얼굴부터 본다. 엄마의 얼굴에 즉각적인 평가 결과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스스로 행동하기 전에 엄마의 평가를 먼저 기다린다.

    아이들은 이처럼 일상에서 내 생각보다 남들의 평가에 민감하다. 심지어 자기 자신조차 속인다. 내 생각보다 남의 눈을 심각하게 의식하는 아이들이 자라서 어떻게 될지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그런 사람들을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쉽게 상처받고 쉽게 좌절하며, 자신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자신조차 모르는 사람들을 많이 보아왔다. 이들이 일을 통해 탁월한 성과를 내지 못함은 전혀 이상한 현상이 아니다. 자신감이 부족하고, 자신감에서 비롯된 창의성의 부족할 때 좋은 성과가 나오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가 이 세상을 당당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부모의 평가와 눈치를 지나치게 의식하지 않고 자신에게 솔직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실수에 야박하면 부모의 평가에 민감해지고, 결과에 연연하면 자신조차 속이게 된다. 학습 면에서 보더라도 자신을 속이지 않는 아이들의 실력이 월등하다. 최상의 시험공부 전략은 틀린 문제를 두 번 다시 틀리지 않는 데 있다. 그래서 중고등학교 공부의 기본은 오답노트에 있다고들 한다.

    그러나 오답노트의 진가는 형식에 있지 않고 정신에 있다. 틀린 것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두 번 다시 틀리지 않겠노라고 다짐하여 반복 연습하는 데 있다. 오답노트를 아무리 멋들어지게 만들어도 실력이 나아지지 않는 아이가 있고 오답노트가 없는데도 실력이 향상되는 아이가 있다. 오답노트를 꼭 만들지 않더라도 틀린 문제를 ‘실수’로 여기지 않고 ‘틀렸다’는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다시 틀리지 않도록 노력한 아이는 반드시 실력이 나아질 수밖에 없다. 다른 이들의 평가가 아닌 자신에게 솔직한 사람이 공부 역시 잘할 수밖에 없다.

    이런저런 이유로 나는 우리 딸이 탁월하기를 먼저 바라지 않는다. 그저 제정신 가지고 살아가길 바랄 뿐이다. 남의 정신으로 살아가는 불행을 겪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행복은 제정신에서 나오고 탁월함 또한 제정신일 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성적이 아니라 성격에 주목을

    Posted on : 2010-12-01 | By : 손 병목 | In : 신문잡지 기고

    태그:, ,

    1

    [원고 원본] 성적이 아니라 성격에 주목하라

    습관이 되지 않은 행동을 하려면 엄청난 정신 에너지가 소모된다. 좋은 습관은 정신 에너지를 절약하여 보다 창조적인 곳에 쓸 수 있게 한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데 매번 의지와 결단이 필요하다면 이보다 더 큰 에너지 낭비가 또 어디에 있을까. 그러나 문제는 습관 교정에는 시간이 꽤 많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치아 교정에도 1,2년 걸리는데 습관 교정을 단기간에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 분명한 것은 습관 교정이 치아 교정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다. 습관은 뇌의 회로를 바꾸는 일이기 때문이다.

    성인도 자신의 좋지 않은 습관을 바로잡는 데 매우 큰 어려움을 겪는다. 생각만 반복할 뿐 막상 바로잡지 못하는 습관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도 우리는 아이들에게 참 쉽게 말한다. 좋은 성격, 좋은 공부 습관을 매우 쉽게 기대하고, 그 기대가 어긋나면서 매일 힘들어 한다. 좋은 공부 습관을 만든다는 것은 언뜻 생각해도 쉬운 일이 아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규칙적으로 공부한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어른에게조차 벅찬 일이다. 공부를 못하고 싶은 아이는 없지만 그렇다고 매일같이 공부를 꼭 해야겠다는 목적의식을 갖고 있는 아이 역시 매우 드물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공부가 비록 노는 것보다야 재미가 없지만 죽기보다 싫을 정도는 결코 아니라는 것이 일반적인 아이들의 느낌이다. 문제는 속도다. 그 속도만 제대로 조절해도 우리 아이들이 평생 공부에 담을 쌓고 사는 일은 막을 수 있다.

    초중고 시기의 공부가 전부는 아니다. 살아가면서 정작 중요한 것은 그 이후이다. 타고난 재능은 결코 20대를 넘어서까지 지속되지 않는다. 정말 공부가 필요한 시기는 그 이후이다. 누구나 학교 공부를 잘할 수는 없지만, 공부 그 자체를 포기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어렸을 때의 부정적 공부 경험으로 평생을 공부 무기력증으로 살아가게 해서는 안 된다. ‘나는 공부 못해’, ‘나는 공부에는 소질이 없어’라고 스스로 단정하고 평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공부라는 것이 어디 그리 쉽게 포기해도 되는 것인가. 배움을 놓아버리고 살아가는 삶이 과연 얼마나 성공적이며 얼마나 행복할 수 있을까.

    공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없애고, 아이에게 맞는 공부 습관을 만들어주는 것은 순전히 부모의 몫이다. 부모의 도움 없이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을 들이는 아이는 매우 드물다. 공부 습관을 갖추는 데는 부모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다만 아이의 성향에 따라 비교적 쉽게 익숙해지는 아이가 있는 반면 그 습관이 들기까지 지난한 아이도 있다. 그 개인차는 부모가 어찌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왜 우리 아이는 공부하기를 이토록 어려워할까 안타까워하는 부모를 많이 보아왔다. 답답해하고 절망하는 부모들을 많이 보았다. 공부 문제로 아이보다 더 아픈 부모를 많이 보아왔다. 그러나 자녀는, ‘너 때문에 산다’, ‘너 때문에 못 살겠다’, ‘넌 왜 이렇게 공부를 못하니’,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자녀는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이다. 나 또한 알 수 없는 인연으로 아내를 만나 운명 같은 딸을 낳았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내게 아내는 인연이요 자식은 운명이며, 그런 까닭에 부부는 운명을 공유한 인연인 듯하다.

    부모에게는 오직 자녀가 제대로 자랄 수 있도록 도와줄 의무만 있다. 부모가 선택하여 자녀를 낳은 것이지 자녀가 선택하여 부모를 고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선택에는 위험부담이 있고, 선택은 그 위험부담까지 함께 선택하는 것이다. 그게 어른이다. 선택은 했지만 위험부담은 감당하기 싫다는 것은, 종일 놀고 싶은데 공부는 잘하고 싶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딱 초등학생 수준이라는 뜻이다. 아이는 탓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할 운명이라는 생각 없는 자녀 교육은 기대와 현실 사이에서 겉돌 수밖에 없다.

    좋은 학습 습관을 위한 학습 관리만 하더라도 쉽게 성과를 내기 어렵다. 아무리 짧아도 1~2년은 걸리고 대개 4~5년은 걸린다. 게다가 특히 놀기 좋아하고 행동하기 좋아하는 아이는 초등학교 때 부모가 만족할 만한 학습 습관을 갖추기가 거의 불가능할 수 있다. 말귀를 좀 알아들을 때쯤 되면 사춘기가 되어 엉뚱한 데서 갈등이 생긴다. 공부 기회를 영영 놓치지나 않을까 걱정된다. 그럴수록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부모의 근본 역할은 아이의 성적이 아니라 성격 형성에 있다. 성격 자체는 좋고 나쁨이 없다. 타고난 성격을 해치지 않으며 아이의 성격에 따라 학습 습관을 지도하는 방법은 다음 시간에 다루기로 한다.

    화를 멈추는 ‘버튼’을 만들자

    Posted on : 2010-11-24 | By : 손 병목 | In : 신문잡지 기고

    태그:, ,

    1

    경향신문 2010년 11월 24일 화요일 22면 손병목의 학부모 마음 읽기

    [원고 원본] 내 마음의 정지버튼을 만들자

    고통을 통해 행복의 소중함을 깨닫지만 행복을 느끼기 위해 일부러 고통스러울 필요는 없다. 그런데 왜 기를 쓰고 고통을 느끼려는 사람들이 많은지 모르겠다. 쓸데없는 분노는 그저 고통일 뿐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습관적으로 화를 내고 있는 부모를 많이 본다. 왜 애를 낳아 이 고생을 하느냐고 신세 한탄도 하고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까지 한다. 그런 부모에게 정말 자식이 없다면 지금보다 더 행복할 수 있을지 나는 의문이다. 화가 습관인 사람은 자식이 있든 없든 어떤 요인으로도 분노가 일어나기 쉬운 사람이다.

    화를 조절하려면 화가 나는 이유부터 알아야 한다. 화는 대개 세 가지 이유 때문에 생기는데, 먼저 기대가 어긋났을 때 화가 난다. 이때의 기대를 ‘당위적 기대’라고 한다. ‘당연히 ~해야 한다’는 기대가 어긋났을 때 실망감과 상실감을 느껴 화로 표출된다. 엄마가 한마디 했으면 당연히 알아서 공부해야 하는데 안 했거나, 어제 가르쳐줬으니 오늘 분명히 알아야 하는데 또 틀렸을 때 화가 난다. 공부를 시작했으면 집중해서 해야 하는데 뭉그적거릴 때 화가 난다.

    두 번째로 나의 입장에서 생각할 때 화가 곧잘 난다. 아이가 말도 없이 친구와 노느라고 집에 늦게 들어왔다면 대개 화가 나겠지만, ‘저 나이 때 오죽 놀고 싶었으면 그렇게 했을까’하는 생각이 들면 화가 누그러지기도 한다. 약속 장소에 늦게 나오는 친구를 기다리며 ‘바빠 죽겠는데 불러놓고 왜 안 나오는 거야?’라고 생각하면 화가 나지만 ‘얘가 늦을 애가 아닌데 무슨 일이 있나?’ 또는 ‘차가 많이 밀리나 보다’라고 생각하면 화가 덜 난다. 화는 오로지 내 입장에 갇혀 있을 때 극하게 표출된다.

    마지막으로 허용 한계를 넘어설 때 화가 난다. 아이가 조금 늦게 오는 것은 허용할 수 있을지 몰라도 말도 없이 서너 시간을 늦으면 화가 난다. 가족끼리 있을 때 화가 나지 않던 아이의 행동도 여러 사람들 앞에서 무례하면 화가 난다. 평상시에 넘어갈 수 있는 행동도 몸이 좀 아프면 화가 날 때가 있다. 부모의 마음 속 허용 한계를 넘어선 것이다.

    이들 세 가지 조건 중 하나를 충족할 때 화가 나는데 가장 근본적인 것은 처음 이유, 당위적 기대가 어긋났을 때이다. 따라서 분노 조절의 핵심은 기대 조절에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미 화가 난 상태에서는 이성을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생각나는 대로 퍼붓고 나서야 도가 지나쳤음을 알게 된다. 뒤늦게야 나의 기대가 헛된 것임을 알게 된다.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그래도 참으로 다행인 것은 연습을 하면 화를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몇 번을 가르쳐 준 문제인데 또 틀렸다면 화를 내기 전에 일단 멈추고 ‘나의 기대는 정당한가?’를 되묻는 연습을 해야 한다. 아이가 엄마를 놀리기 위해 일부러 틀리는 경우는 없다. 엄마의 잔소리가 좋아서 일부러 틀리지는 않는다. 두세 번 가르쳐주면 당연히 알아야 한다는 생각은 오직 부모의 생각일 뿐이다. ‘서너 번 문제를 가르쳐줬는데도 왜 또 틀렸을까? 혹시 나의 지도방식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하는 연습을 해보자. 여러 번 틀린 문제를 제대로 가르치기 위해서는 ‘구주어식’ 지도법이 유용하다(본지 4월27일자).
    말은 쉽지만 화가 나는 것을 일단 멈추기가 쉽지 않다. 그럴 때는 ‘내 마음의 정지 버튼’을 만들어 보기 바란다. 정지 버튼의 위치는 신체의 특정 부분으로 정한다. 예를 들어 손바닥에 정지 버튼을 만들었다고 하면, 화가 날 때 ‘멈춰!’라고 외치면서 손바닥을 꾹 누르며 딱 30초만 참아보기 바란다. 우스운 소리로 들릴지 모르겠으나 실제로 해보면 효과가 매우 크다. 내 마음의 정지 버튼을 만들어 화를 조절하고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바꾼 사례는 매우 많다. 지금 당장 마음속으로 천천히 서른 번을 세어보라. 생각보다 긴 시간임을 알게 될 것이다. 특히 화가 난 순간의 30초는 화를 낼지 말지를 판단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다.

    일전에도 말했듯이 화는 ‘나는 것’이 아니라 ‘내는 것’이다. 동일한 상황에서도 화가 나는 사람이 있고 화가 나지 않는 사람이 있다. 나는 화를 낼 자유도 있고 또한 화를 내지 않을 자유도 있다. 화가 난다는 표현 대신 화를 낸다는 표현으로만 바꿔도 화를 조절하기가 쉬워진다. 이 작은 언어 습관이 자극에 대한 수동적이고 반사적인 자세를 주도적으로 바꾸어 준다. 주도적이라는 말은 화를 낼지 말지도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화가 나면 내 마음의 정지 버튼을 누르고 딱 30초만 생각해보자. 지금 나의 화는 정당한지, 나를 화나게 만드는 나의 기대는 정당한 것인지를.

    실수로부터 배우게 하라

    Posted on : 2010-11-17 | By : 손 병목 | In : 신문잡지 기고

    태그:, ,

    1

    경향신문 2010년 11월 16일 화요일 22면 손병목의 학부모 마음 읽기

    [원고 원본] 실수로부터 배우게 하라

    성인의 나이가 되었지만 아직 정신적으로 유아가 아닌지, 부모가 되었지만 아직 정신적으로 미혼이 아닌지 의심스러운 사람들이 있다. 나 또한 스스로 그런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대단히 부끄럽다. 많은 사람들이 결혼은 했지만 아직 정신적으로 미혼인 상태에서 아이까지 낳아 기르려다 보니 버겁다. 둘이서 살기에도 아직 힘겨운 마당에 소중한 생명을 낳아 돌보려니 힘에 부친다. 그것도 엄마에게 거의 전적으로 양육의 부담이 돌아가니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은 축복이라기보다는 부부 전쟁의 시작일 때가 많다. 아이를 낳는 건 쉽지만 ‘부모 되기’는 결코 쉽지 않다.

    우리가 운전면허 자격을 취득하는 까닭은 차를 몰고 도로에 나서면 일단 혼자만의 몸이 아니기 때문이다. 서투른 자의 실수가 타인의 생명까지 앗아가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은 운전에 비할 바가 아니다. 육아는 한 아이의 인생이 달려 있는 문제이다. 그런 까닭에 운전보다 훨씬 중요하고 어려운 ‘부모 되기’에 왜 자격시험이 없을까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렇다고 부모자격시험을 만들자는 말이 아니다. 그런 시험 역시 나는 반대한다. 다만 아이만 낳는다고 저절로 부모가 되는 것이 아님을 미리 충분히 인지하고, 부모 역할을 제대로 배우고 싶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배울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배우지 않고는 어렵다. 유아이든 초등학생, 중고등학생이든 육아는 가슴으로만 이해하기에는 매우 버거운 과제다. 사랑만으로 감당하기 힘든 과제다. 때로는 분노와 경쟁조차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많은 부모들이 부모의 역할에 대해 특별히 아는 바가 없이 부모 역할을 시작한다. 그러면서도 막상 부모가 되면 아이에게 온갖 교훈적인 말을 하고 싶어 한다. 한 마디라도 교육적인 말을 하려 한다. 그러나 아이와의 생활은 굳이 교훈으로 덧칠할 필요가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멋진 말을 남기려 하기보다 눈 마주치며 웃고 부비며 교감하는 것이 훨씬 낫다. 이 단순한 진리조차 힘주어 강조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처음 부모가 되면 아이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경이롭다. 아이들이 세상을 인지해가는 과정이 신비하다. 이 초심을 잃지 않고 마지막까지 지켜보아야 한다.

    지금 시대에 가장 필요한 능력은 남을 이기는 기술이 아니라 자신을 발견하는 능력이며, 아이를 위한 최선의 가르침도 남을 이기는 기술이 아니라 자신을 발견하도록 돕는 일이다. 사물을 하나씩 인지해가는 것은 기본이요, 궁극에는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일을 할 때 즐거우며, 그리하여 진정으로 즐기며 할 수 있는 일이 어떤 것인지를 스스로 발견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다. 스스로 발견하는 과정에는 많은 도전과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실수 없는 도전이 없고 질문 없는 성찰은 없다. 실수로부터 배우는 법을 알지 못하고서 자기정체성을 찾기란 요원하다. 실수를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실수를 두려워하기보다 실수를 통해 나를 발견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적극적 태도를 배울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아이가 물을 쏟으면 대개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야, 좀 조심하지 않구! 여기서 놀지 말랬잖아!” 또는 “더 번지기 전에 마른 걸레 가져와서 닦자.” 이런 말들은 이미 습관처럼 생각할 겨를 없이 순식간에 튀어 나온다. 전자는 과거를, 후자는 현재를 중시하는 부모의 반응이다. 전자는 ‘왜 실수를 했니?’라는 추궁성 질문이고, 후자는 과거에 연연하기보다 당면한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실수를 야단치거나 훈계하면 실수 자체를 두려워하거나 나쁜 것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실수로부터 배우고 깨닫는 법을 모르면 발전이 없다. 아이들의 실수에 야박하게 훈계하는 부모들께 이 말씀을 꼭 드리고 싶다.

    여기에 부정적 평가를 덧붙인다면 그야말로 최악의 반응이다. “넌 왜 만날 그 모양이니? 넌 그게 문제야. 왜 그렇게 조심성이 없니?” 이런 말의 효과는 강력하다. 아이의 머릿속에 ‘넌 조심성 없는 아이야’라는 딱지를 붙임과 동시에 ‘도대체 쟤는 왜 저럴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 말을 하는 부모의 속을 터지게 만든다. 아이에게는 실수를 두렵게 만들고 문제해결보다는 문제 자체를 발생시키지 않으려는 성향으로 유도하며 자존감을 떨어뜨리고, 부모에게는 답답함을 가중시킨다. 이런 부정적 평가성 언어를 줄여보자. 가능하다면 쓰지 않도록 노력하자. 지난 일을 추궁하지 않고 일상의 행동에 부정적 평가를 내리지 않을 때라야 우리 아이는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고 긍정적이며 적극적인 문제해결 의지를 키워갈 수 있다. 실수로부터 배울 수 있다.

    Switch to our mobile si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