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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010년 12월 28일 화요일 22면 손병목의 학부모 마음 읽기 (마지막회)
[원고 원문] 부모 노릇을 즐기자
오늘이 마지막 칼럼이다. 1년 동안 학부모 노릇에 대해 많은 말을 했다. 나 스스로 완전하지 않음에도 만인을 향해 바른 소리를 하려니 많이 부끄러웠다. 그러나 일상이 수행의 연속임을 감안하면 이 글 또한 나와 독자 모두가 한번쯤 쉬어갈 수 있는 시간이 되지 않았을까 스스로 위로하며 그간의 이야기를 정리하고자 한다.
많은 주제를 다루었지만 결국 핵심은 자녀로 인해 고통 받지 말고 자녀와 함께 나날이 행복해지는 연습을 하자는 것이었다. 우리 아이의 인생은 공부가 아니라 공부하는 과정에 형성되는 부산물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성적보다 중요한 것이 성격이라는 것이었다. 학창시절의 공부를 통해 누구는 실패를 두려워하게 되고 누구는 실패를 통해 배우는 아이로 자라게 된다. 누구는 성취감을 배우고 누구는 원죄처럼 공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평생 지고 간다. 누구는 공부하는 과정에서 부모와 마음의 벽이 높아지고 누구는 평생의 조언자로 부모를 섬긴다. 부모 역시 다르지 않다. 아이가 크는 동안 어떤 부모는 분노를 키우고 어떤 부모는 내면을 키운다.
성격에는 좋고 나쁨이 따로 없지만 행복하게 살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자존감이다. 자존감 강한 아이로 자랄 수 있도록 돕기 위해 한 해 동안 가장 많이 사용했던 단어가 ‘공감’이었다. 공감은 대화의 기본이요 소통을 위한 근본 능력이다. 학습 지도 역시 소통 없이는 상호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부모로부터 공감의 유전자를 확실히 전수받지 않은 상태라면 누구나 처음에는 힘들다. 나 역시 대화의 첫 마디를 ‘아, 그렇구나!’로 시작하기가 왜 그렇게 어려웠는지 모르겠다. 긍정도 부정도 아니지만, 긍정보다 더 강력한 공감의 이 한 마디가 왜 그리 어려웠는지 모르겠다. 그 대상이 어른이든 아이이든 내가 옳고 상대가 그름을 증명하기 위해 참 많이 애를 썼으니, 생각해보면 그 끝은 늘 공허했고, 그것이 마치 승리인 양 여겼던 때가 있었으니, 부끄럽다.
공감 다음으로 많이 강조했던 것이 ‘있는 그대로 보기’였다. 아이는 설득의 대상이 아니다.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게 만들고, 좋아하는 것을 통해 성취감을 느끼게 할 때 자존감이 비로소 완성된다. 있는 그대로 보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 역시 경청조차도 내 생각을 잘 전달하기 위한 방법쯤으로 인식했던 때가 있었다. 잘 들어주는 것이 내 말을 잘 듣게 만드는 지름길인 줄 알았다. 지난 일이지만 이 또한 부끄럽다. 대화를 통해 제일 먼저 드러나는 것은 견해 차이인데, 누구는 견해가 다르기 때문에 답답하거나 미워하는 마음이 들고, 누구는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이해하는 마음이 생긴다. 있는 그대로 볼 줄 아는 지혜를 터득하지 못하면 일상은 답답함과 화남의 연속이다.
자존감은 선언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 줄 아니?’, ‘이게 다 네가 잘되라고 하는 것이야’, ‘자신감을 가져’, ‘너는 잘할 수 있어’, 이런 말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아이를 있는 그대로 볼 줄 아는 지혜와 거기에서 비롯된 공감의 기술만이 아이의 자존감을 키울 수 있다. 자존감은 스스로 살아갈 가치가 있다고 느끼는 ‘자기가치’와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의 합이다. 아이를 지극히 사랑한다고 해서 자존감이 커지는 것은 아니다. 내가 사랑하는 것보다 아이가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 더 중요하다.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만이 자기가치를 키우고, 스스로 선택한 것을 스스로 해낼 때만이 자신감이 커진다.
음치가 음악을 가르칠 수 없고 물을 무서워하는 사람이 수영을 가르칠 수 없듯이 자존감이 약한 부모가 자녀의 자존감을 키우기가 쉽지 않다. 엄마의 행복이 자녀의 행복이라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일상의 경험을 통해 매일 느끼듯이 부모 노릇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부모 노릇은 분명히 어른의 역할이다. 아이에게 투정부리는 부모는 아직 어른이 아니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이 말뜻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결코 삶을 투정하지 않는다. 선택의 주어가 누구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행복해지기 위해 결혼했고, 행복해지기 위해 아이를 낳았다. 이제 행복해지는 노력만 하면 된다. 부모 노릇을 즐기자. 생각만큼 부모 노릇 ‘제대로’ 해볼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 하루하루가 힘겹게 느껴지다가도 가끔 돌아보면 시간은 어이없이 빠르게 흘러간다. 즐기기에도 부족한 시간, 투정부릴 시간이 없다.
그동안 <손병목의 학부모 마음 읽기>를 아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우리 모두 아이와 함께 커가는 부모가 될 수 있기를 기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