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따뜻한 부모가 될 수 있도록 돕습니다. 현명한 학부모가 될 수 있도록 돕습니다.
  • 글도 쓰고 강연도 합니다.
  • 제 트위터는 @itmembers, 페이스북은 www.facebook.com/itmembers입니다.
  • 네이버 블로그는 charen.kr입니다. 최신 글은 네이버 블로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 요즘 중국차에 푹 빠져 있는데, 중국차에 대한 얘기도 네이버 블로그에서 전해드립니다.
  • 명령하지말고 부탁하자

    Posted on : 2010-11-09 | By : 손 병목 | In : 신문잡지 기고

    태그:, ,

    2

    경향신문 2010년 11월 9일 화요일 22면 손병목의 학부모 마음 읽기

    [원고 원본] 주도적인 아이로 키우기

    “모든 성공한 사람들은 실패한 사람들이 하기 싫어하는 것들을 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그들 역시 싫기는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그러나 그들은 싫은 감정에 앞서 강력한 목적의식이 있었다.” 알버트 그레이의 말이다. 일 잘하는 사람은 사무실에 도착하여 5분 내에 그날의 가장 중요한 일을 파악한다. 그리고 잊지 않고 실행한다. 일 못하는 사람은 PC를 켜자마자 웹서핑부터 한다. 그리고 한 동안 허드렛정보에 묻혀 흘러간다. 일찍 출근해봐야 몸만 축난다. 목적의식이 약하기 때문이다.

    목적의식 없이 성공하기란 요원하다. 목적의식은 목표와는 조금 다른 개념이다. 내가 하고 있는 행동에 대한 목적을 뚜렷하게 자각하는 것을 목적의식이라 한다. 자각이 부족하면 우리는 사는 게 아니라 실은 살아질 뿐이다. 자기 행동의 목적을 자각하는 것은 매우 유익한 습관이다. 행복과 성공에 이르기 위한 절대적인 습관이다.

    나는 ‘습관’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해왔다. 좋은 습관 하나가 인생을 바꾸고, 나쁜 습관 하나가 인생을 망치기도 하는 것을 듣고 보아왔다. 그런 까닭에 우리 아이에게 당장의 성적보다는 좋은 습관을 물려주는 것이 훨씬 값지고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하고, 지식을 주입하기보다 습관을 바로잡자는 취지로 많은 강연을 했었다. 그러나 습관을 말하되 결국 공부습관을 주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 학부모들의 가장 큰 고민이 그 지점인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한시가 바쁜 부모들을 모셔다 놓고 장광설을 늘어놓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 신문사에서 오랜 기간 좋은 지면을 할애해준 덕택에 일반 강연 때는 하지 못했던 말들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 오늘부터는 공부습관보다 훨씬 중요한 몇 가지 습관에 대해 말하려 한다.

    인생을 설계할 때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자신이 원하는 일’을 찾는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이 가장 어렵다. 자신이 진정 무엇을 하고 싶은지 자기조차도 모르기 때문이다. 목표가 없으니 목표 달성의 성취감 또한 없다. 지금도 많은 젊은이들이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 성공은 하고 싶고, 성공을 하려면 핏빛보다 선명한 목표가 필요하다는 것을 아는데, 목표는 곧 내가 가장 하고 싶은 것이어야 하는데, 그걸 모르니 답답하다.

    목표는 어느 순간에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자신을 관찰하고 되돌아보는 과정에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발견하는 능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어떤 일을 할 때 나는 가장 즐거우며, 어떤 순간에 나는 가장 기쁘고 보람이 있는지, 현재의 나의 삶은 어떠한지를 관찰하고 분석하여 현상에서 본질을 끌어내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것이 곧 자각과 성찰 능력이다. 자각과 성찰은 내 행동의 주인이 ‘나’라는 강력한 의식이 있을 때라야 가능하다. 삶은 누군가에 떠밀려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선택하여 사는 것이라는 의식이 있어야 가능하다. 이것이 바로 삶을 ‘주도하는 습관’이다. 부모의 도움 없이도 우리 아이가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어나가길 원한다면, 우리 아이에게 물려줄 제1습관이 바로 이것이다.

    일상의 행동을 자각하면서 자신의 삶을 주도하도록 가르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질문이다. 지시와 명령은 생각할 필요를 없게 만든다. 적절한 질문만이 생각을 자극한다. 생각 없이 산다는 말은 바쁘게 산다는 말과 거의 동의어로 쓰인다. 바쁘기만 할 뿐 생각이 없으면, 결국 공허함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부모도 바쁘고, 아이들은 더 바쁜 게 지금의 생활상이다. 세상이 바쁘고 빨라질수록 오히려 생각하는 사람만이 살아남는다. 우리는 오늘 우리 아이에게 생각하고 판단하여 스스로 행동할 시간을 얼마나 주었는가.

    조금만 살아봐도 안다. 지금까지 내가 원하던 것, 그 욕망 중 상당수가 실은 타인의 욕망이었다는 것을. 르레 지라르는 이를 모방적 욕망이라 말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부러워하는 것을 원하는 삶은, 끝내 공허하다. 모방의 욕망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발견하도록 돕는 것, 자신의 행동을 자각하고 선택하는 삶을 살도록 도와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다. 그러면 당장 지금부터 지시와 명령을 대폭 줄이자, 없애면 더 좋다. 오늘부터 최소 일주일만이라도 우리 아이에게 ‘해라’라는 말을 하지 말아 보자. 대신 ‘지금 무얼 하는 게 좋을까?’라는 말로 바꿔보자. 굳이 질문할 필요까지 없는 일이라면 ‘이걸 하면 어떨까?’ 청유형으로 바꿔보자. 당장 해야 끝내야 할 일이 산더미인데 언제 그러고 있냐는 분도 있겠지만, 명령으로 만들 수 있는 인간형은 기껏해야 말 잘 듣는 아이일 뿐이다.

    이기적인 사춘기, 사랑으로 통하라

    Posted on : 2010-11-02 | By : 손 병목 | In : 신문잡지 기고

    태그:, ,

    0

    경향신문 2010년 11월 2일 화요일 22면 손병목의 학부모 마음 읽기

    [원고 원문] 사춘기, 사랑의 ‘의지’가 필요한 시기

    초등학교 6학년 새롬이는 요즘 한창 남자 가수 그룹에 빠져있다. 벽에 그 가수들의 대형 사진을 붙여 놓았다. 새롬이 엄마는 걱정이 많다. 이러다가 공부는 뒷전이고 연예인들 꽁무니나 쫓아다니는 아이가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어,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냐고 물어왔다. 그 외에도 내가 운영하는 사이트에는 사춘기 아이들에 대한 질문들이 꽤 많다. 공부는 뒷전이고 친구와 노는 데만 정신이 팔린 아이, 외모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는 아이, 이성 친구를 사귀는 아이, 진학 문제에 대해 부모와 갈등을 빚고 있는 아이, 말이 너무 없어서 대화가 단절된 가족 등 그 유형도 다양하다.

    각각의 사례별로 일일이 해결책을 나열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사춘기 아이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하려는 의지 없이는 그 어떤 해결책도 소용없다. 많은 부모를 만나보면서 내가 느낀 것은, 자녀와의 문제 해결에 어려움을 느끼는 부모들의 가장 큰 문제는 해결책을 몰라서가 아니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약하다는 것이다. 사랑은 지키려는 의지가 없으면 순식간에 부서진다. 사춘기 아이와의 문제 해결에는 사례별 매뉴얼이 아니라 사랑의 ‘의지’가 필요하다.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게 만들지 못하는 그 어떤 해결책도 사춘기 아이들이 받아들이기 어렵다. 의사소통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공감․전달․무패의 기술(본지 4월6일자)이며, 사춘기 시기야말로 부모교육을 통해 배웠던 모든 기술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때다. 공감․전달․무패의 기술을 제대로 활용할 때다.

    이미 경험했다고 그것을 완전히 아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미 오래 전에 사춘기를 겪었고, 그 때의 기억이 또렷하게 각인되어 있지만, 그렇다고 사춘기 아이들과 소통이 쉽지는 않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산발적이고 막연한 반면 사춘기의 기억은 매우 또렷하다. 특히 부모와의 큰 갈등을 겪었던 경험이 있다면 더욱 선명하다. 오죽했으면 부모 자식은 전생의 원수지간이었다는 말까지 할까. 이제 우리가 부모가 되었지만 부모 자녀의 그때 그 갈등이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입장이 바뀌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는 걸까, 부모 입장에서 보니 아이들의 생각과 행동은 모순투성이이다. 아이들은 종종 부모가 자신에게 관심이 너무 없다고 불만을 표출하는 반면 사사건건 자신을 간섭한다고 반항한다. “우리 부모는 저에게 너무 무관심해요”라며 한없는 관심을 요구하면서도, “저는 이제 애가 아니어요.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마세요”라며 독립을 시사하는 발언이 많아진다. 부모가 보기에는 이 시기의 아이는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며 예의가 없다. 자기가 필요할 때만 부모를 찾고 그렇지 않을 때는 부모의 존재를 성가시게 생각한다. 바로 이것이 사춘기 아이들의 가장 큰 특징인 자기중심성이다.

    사춘기의 자기중심성을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자녀와 의사소통이 결코 쉽지 않다. 이성을 사귀고, 연예인에게 빠지며, 단정하지 못한 옷차림에 대해 부모가 간섭할 때는 어른 취급을 해달라고 항변하지만, 부모가 용돈을 주고, 밥을 해먹이고, 학원을 알아봐 주는 것은 매우 당연하게 생각한다. 부모의 헌신에 대해 고마움을 느끼기보다 부모가 나에게 당연히 해야 할 의무라고 생각한다. 사실 우리도 그때는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던가. 부모가 보기에 참으로 이기적이고 철없이 보이는 이 행동이 사춘기의 가장 큰 특징임을 이해할 때 비로소 아이와의 소통이 가능해진다. 도저히 아이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이 강할 때 부모는 경청과 공감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이것이 내가 많은 부모들에게서 느꼈던 문제 해결 의지 부족의 원인이었다. 아이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없을 때 공감이 어렵고, 공감이 없을 때 그 어떤 의사소통도 불가능하다.

    환절기에는 몸에 탈이 나기 쉽고, 정치적 과도기에는 혼란이 불가피하다. 사춘기는 우리 아이 인생에 처음 맞는 과도기이니 갈등이 생기는 것은 매우 당연하다. 일교차가 클수록 감기에 걸리기 쉽듯이 감정 변화의 기복이 심한 사춘기는 부모도 자녀도 쉽게 상처를 입는다. 부모도 아이도 피해의식이 심할 때이다. 아이 때문에 힘들다는 피해의식부터 버리자. 사춘기는 부모도 자녀도 모두 힘든 시기이며, 굳이 피해자가 누구인지를 따지자면 둘 다 피해자일 수 있다. 사춘기 갈등의 근본 원인이자 가장 큰 특징인 자기중심성을 성인이 되어서도 떨쳐버리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 어른으로 크는 유일한 방법은 타인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줄 아는 것이며, 이는 부모로부터 배울 수 있는 소중한 가르침이다. 아이를 이해하려는 의지, 공감을 위한 노력은 아이가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 건강한 어른이 되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화는 ‘나는 것’이 아니라 ‘내는 것’

    Posted on : 2010-10-27 | By : SON BYOUNGMOK | In : 신문잡지 기고

    태그:, ,

    1

    경향신문 2010년 10월 26일 화요일 22면 손병목의 학부모 마음 읽기

    [원고 원본] 화는 ‘나는’ 것이 아니라 ‘내는’ 것

    “친구들과 놀지 말고 공부 좀 해”, “엄마, 잔소리 좀 그만 해요”, “네 앞에서 내가 죽는 걸 봐야 정신을 차리겠니?” 그런 뒤 엄마가 실제로 목을 매 목숨을 끊었다. 마치 소설 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참으로 안타깝다. 나는 부모된 자로서 망자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최악의 방법을 선택한 것에 대해 한없는 안타까움과 연민을 느낀다. 이 사건은 공부의 의미, 사춘기 자녀 교육, 분노 조절에 대해 또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

    나는 이 칼럼을 통해 공부를 잘하게 하는 것보다 행복하게 공부하는 아이로 키우기를 바랐다. 공부 그 자체보다 초중고 학창 시절에 공부하는 동안 형성된 성격과 태도, 습관이 아이의 미래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했다(본지 8월17일자). 자녀교육의 성패는 부모의 분노 조절 능력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본지 2월16일자). 분노 조절이 어렵다면 ‘선택일기’를 쓰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했다(본지 5월18일자). 물론 쉽지 않은 일임을 안다. 그러나 공부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분노 조절 능력 없이는 자녀 교육은 물론 부모 스스로의 삶에도 고통이 크다.

    분노는 수많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직접적인 화로 표현되기도 하지만 뒷소리, 거짓말, 비난, 위선, 도둑질, 우울증, 칩거, 태만, 절망, 자기 파괴, 낮은 자존감, 강박관념, 강박행동, 복수심, 중독, 두려움, 자기학대, 가학, 통증과 질병, 정신 장애, 탈진, 순교(타인을 죄인으로 만들기), 자살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어느 것 하나 내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화가 일어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그것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면 결국 자신을 파괴하고 만다.

    우리는 화가 나면 주로 공격형, 수동형, 수동공격형으로 분노를 표현한다. 공격형은 당사자에게 직접 화를 표현하는 것으로 소리를 지르거나 비난하는 방식이다. 흔히 욱하는 성격의 부모, 뒤끝 없는 성격이라 자칭하는 부모들의 분노 표출 유형이다. 수동형은 당사자에게 직접 표현하지 못한 채 가슴속에 담아두거나 엉뚱한 대상에게 표현하는 유형이다. 자식 문제로 남편에게 화를 내거나, 남편 문제로 자식에게 화를 내는 것, 이도저도 못하고 속앓이만 하는 것, 음주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수동공격형은 당사자에게 직접 화를 내지는 않으나 보이지 않게 보복하는 유형이다. 두고 보자는 말을 자주 하는 사람들이 이럴 가능성이 높다. 당사자가 없는 상태에서 뒷소리를 많이 하고 안 좋은 소문을 퍼뜨리는 사람이 이에 해당된다. 나의 분노 유형이 이 중에 해당된다면 분노를 건강하게 관리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노력이 필요하다.

    화를 조절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화는 ‘나는 것’이 아니라 ‘내는 것’이라는 인식이다. 어떤 순간에 마음속에 화가 일어나는 것이야 어쩔 수 없지만, 그것을 상대방에게 분출하는 것은 나의 선택이다. 똑같은 상황에서도 누구는 화를 내고 누구는 내지 않는다. 똑같은 상황에서도 다른 아이에게는 화가 나지 않는데 우리 아이에게만 화가 난다. 그렇다면 분명하다. 화는 나의 선택이며, 나의 선택 없이는 그 누구도 나에게 화를 내게 할 수 없다.
    “엄마, 잔소리 좀 하지 마세요”, “네가 잔소리 하게 만들었잖아. 엄마가 잔소리 좀 안 하게 만들어 봐”, 전형적인 ‘네 탓 화법’이다. ‘네 탓 화법’의 근원에는 나의 행동은 타인에 의해 결정된다는 수동적 사고방식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사고방식으로는 결코 화를 조절할 수 없을뿐더러 아이 역시 비슷한 사고를 배우게 된다. 주도적인 아이로 자라기 힘들다. 스티븐 코비 박사에 의하면 성공하는 사람들의 제1습관은 주도적인 행동에서 나오는데, 주도적인 행동의 근원에는 모든 행동은 내 선택의 결과라는 인식이 있다. ‘네 탓 화법’으로는 이런 인식이 자라기 힘들다.

    기사를 보니 목숨을 끊은 엄마는 40대였고 아이는 사춘기 중학생이었다. 3,40대 부모와 사춘기 자녀의 조합은 부모에게도 자녀에게도 가장 힘든 때일 수 있다. 부모로서 이제 겨우 아이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나 싶었는데, 십년 넘는 기간에 걸쳐 가까스로 육아에 익숙해지나 싶었는데, 아이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다시 태어난다. 아이의 탄생을 기억하는 것은 오직 부모일 뿐 아이들은 부모와의 첫 만남을 기억하지 못한다. 부모와의 첫 만남은 무의식에 기록되지만 두 번째 만남은 의식 속에 강하게 기억되는데, 두 번째 만남이 바로 사춘기이다. 십여 년의 양육기간 동안 아이 마음 공감하기, 마음 읽어주기가 능숙해졌다면 사춘기가 부모에게 큰 혼란을 주지는 않는다. 다소 대화가 줄어들고 반항하고 공부보다는 외모와 스타에 대한 관심이 일시적으로 커진다는 것만 미리 알고 있으면 충분히 슬기롭게 소통할 수 있다. 사춘기 자녀 교육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 주에 계속된다.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게 하라

    Posted on : 2010-10-20 | By : SON BYOUNGMOK | In : 신문잡지 기고

    태그:, ,

    1

    경향신문 2010년 10월 19일 화요일 22면 손병목의 학부모 마음 읽기

    [원고 원본] 부모교육이 꼭 필요한 사람

    저 사람이 말은 저렇게 해도 심성은 고운 사람이야, 원래는 착한 사람이야, 이런 말을 종종 듣지만 나는 새겨듣지 않는다. 원래부터 심성이 곱지 않고 착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지금 착하지 않은데 과거에 착한 경력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싶다. 지금 상대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말과 행동을 하는데 ‘원래’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상처받은 이의 마음을 달랠 수는 없다. 처방은 명확하다. 나의 말과 행동이 상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반성하고 내 원래의 마음이 그러하지 않다고 날마다 호소하기보다는 자신의 대화 방식과 행동 자체를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도 비슷한 문제가 반복된다. 분명히 아이를 사랑해서 하는 말과 행동인데도 아이는 그것을 느끼지 못한 채 부모 자녀 관계가 어긋난다. 모든 부모는 자녀를 사랑한다. 그러나 자녀가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지 못하면, 그건 사랑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방식을 바꾸지 않는 이상 아이는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없다. 사랑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는 것은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부모교육에서 다루는 핵심 주제이다.

    속마음과는 달리 상대에게 오해받을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은 처세에 취약하다. 처세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과 사귀어 살아간다는 뜻이다. 처세는 생존의 문제다. 처세의 극단적 장애인 자폐는 생존을 어렵게 한다. 부모가 아이와 나누는 대화는 아이들이 처음 배우는 처세의 기술이다. 아이들이 터득하는 대화의 기술은 거의 전적으로 부모로부터 배운다. 부모와의 대화를 통해 사회 안에서 잘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부모가 만약 처세의 기술이 부족하다면 그 영향이 자녀에게까지 미치니, 그래서 부모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특히 부모교육이 꼭 필요하다. 원래 그러려 그런 게 아니었는데 욱하는 마음에 자주 화를 내는 사람, 옆에서 지켜보자니 너무 답답해서 야단치는 것이 잦은 사람. 이런 부모 밑에서 아이는 참을성을 배울 수 없다. 부모의 성격이 이러한데 아이에게 인내력과 집중력을 요구하는 것은 모순이다.

    “힘들어 죽겠는데 너까지 왜 이러니? 내가 이렇게 고생하는 이유가 뭔데, 다 너를 위해서야!” 이처럼 자신의 고통을 스스로 이겨내기보다는 아이와 나누려는 부모. 이런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일찌감치 ‘애어른’이 된다. 애어른만큼 불쌍한 아이도 없다. 남들 보기에는 기특하게 보일지 몰라도 부모의 갈등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기에 훗날 배우자와의 관계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내 삶의 무게를 아이에게 지우지는 말아야 한다.
    “우리 애는 정말 착해요. 지금까지 큰 소리 한 번 낼 일이 없었어요.” 이런 말을 자랑삼아 하는 부모. 물론 아이가 매우 건강하게 자라는 과정일 수도 있지만, 지나치게 말을 잘 듣는 아이는 순종하는 방법을 터득한 아이일 수 있다. ‘순종하는 병’은 실제 병명이기도 하다.

    잔소리가 지나치게 많은 부모. 잔소리의 사전적 의미는 필요 이상의 말이다. 잔소리인지 아닌지는 엄마의 느낌이 아니라 아이가 느끼는 것이다. 잔소리 많은 엄마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여 행동하는 능력이 많이 떨어진다. 자신의 생각에 대해서도 확신이 없다.

    아이가 자꾸 부모를 훈계하려 든다고 말하는 부모도 있다. 겨우 열 살 전후한 아이들이 부모를 훈계할 수는 없다. 아이의 말대답을 훈계라고 받아들이는 부모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다. 부모조차 아직 어른이 덜 된 탓이다.

    몇 가지 사례만 들었지만 위의 사례를 비켜갈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싶다. 부모를 대상으로 강연을 하는 나 역시 배워서 익히기 전까지 위에서 말한 오류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지금도 배우는 중이다.

    부모교육에서 가장 먼저 말의 기술을 배우는데, 부모는 아이에게 ‘말’을 하지만 아이는 말의 의미보다 더 중요한 것을 배운다. 그 말을 통해 누구는 사랑받고 존중받는다는 느낌, 곧 자존감을 배우고, 누구는 정반대의 감정을 느낀다. 충분히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는 아이는 부모가 혼을 내더라도 혼날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버릇을 잡겠다는 부모에게 늘 혼났던 아이는 부모로부터 사랑받고 있다는 생각이 부족하다. 아이를 사랑하는 기술이 부족하다고 생각된다면 열 일 제쳐두고 주변에 부모교육이 있다면 찾아서 듣자. 시중에 좋은 책도 많이 나와 있으니 꾸준히 읽고 실천해보자.

    해결해 주기보다 공감해 주어라

    Posted on : 2010-10-15 | By : SON BYOUNGMOK | In : 신문잡지 기고

    태그:, ,

    1

    경향신문 2010년 10월 12일 화요일 22면 손병목의 학부모 마음 읽기

    [원고 원본] 공감은 존중의 표현이고 해결은 무시의 표현

    결혼 초 나는 아내와의 대화에 무척 서툴렀다. 말싸움도 잦았다. 실은 싸움이라 할 것도 없었다. 대개의 가정에서 그러하듯 남자가 말로써 여자를 이기기는 어렵다. 싸움의 시작과 끝은 대개 여자의 말로써 시작되고 종결된다. 남자가 마지막에 한 마디 거들면 싸움은 다시 원점이 된다는 것을 남자들은 경험으로 안다. 남자들은 대개 여자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기조차 힘들어 한다. 동어반복에 가까운 여자의 말을 남자들은 극히 싫어한다. “여보, 너무 속상해. 기범이 엄마가 미워” 이렇게 대화가 시작되면 대개의 남자들은 본능적으로 속상한 원인을 밝히고 이것을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고민하게 된다. 그런데 아내가 속상하다는 말만 되풀이하거나, 해결책이 빤히 보이는데도 했던 말을 반복하면 남자는 짜증을 낸다. “기범이 엄마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지”, “그냥 당신이 참어”, “그래서 어쩌겠다는 거야?” 이런 말을 하게 되고, 이 말은 부부싸움의 시작이 된다. 바깥 싸움이 내전으로 바뀌게 된다.

    이제는 이런 일이 잘 없다. 이럴 때는 그냥 들어주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대화법, 자녀 교육, 부부 문제, 심리학 등 여러 공부를 하면서 뒤늦게야 깨달았다. 남자와 여자는 대화하는 목적부터가 다르다는 것을. 남자는 전달하고 해결하기 위한 대화를 한다. 그래서 해결해야 할 문젯거리가 있어야 대화가 원활하다. 별일 없이 남자 둘이 앉아 한가로이 차 마시는 광경은 보기 어렵다. 대신 고민 많은 후배가 선배를 불러내어 술 한 잔 하며 고민을 말할 때 남자는 기쁜 마음으로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술값까지 낸다. 무언가를 해결했다는 기꺼운 마음에 비용까지 계산하는 것이다. 반면 여자는 가슴속의 감정을 털어놓기를 좋아한다. 그것이 크든 작든 일단 감정을 발설하고 맞장구쳐주기를 원한다. 아내가 속상하다고 말하면, 그랬구나, 속상했구나 하는 마음으로 받아주고 맞장구쳐주면 끝날 일이다. 그 정도만으로도 아내는 다시 건강한 정신 상태를 회복하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한다. 여자는 공감과 관계 유지를 위한 대화가 주된 목적이다.

    남녀의 대화 목적이 다른 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된 생물학적 ‘차이’일 뿐이다. 남녀의 문제는 대개 차이가 있어 불행한 것이 아니라 차이를 이해하지 못해 불행한 것이다. 부부 불화의 가장 큰 원인을 대개 성격 차이라고 하지만 성격의 차이가 없는 부부는 없다. 가족 치료 전문가 존 가트맨 박사의 연구를 통해서 이미 드러났듯이 부부가 이혼에 이르는 가장 큰 문제는 성격 차이가 아니라 차이를 풀어가는 방식에 있었으며, 대화가 그 중심에 있다.

    대화의 오류는 부부의 문제만은 아니다. 부모 자녀 간의 문제 역시 거의가 대화로부터 비롯된다. 잘못된 대화 방식이 부부를 이혼에까지 이르게 하듯이 서투른 대화가 부모 자녀의 관계를 소원하게 만든다. 관계의 소원함은 필연적으로 영향력의 약화를 낳는다. 부모가 자녀에게 거의 영향력을 미치지 못한다고 느낄 때 엄마는 스스로 존재감을 잃고 무기력해진다. 올바른 대화법은 자녀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 엄마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남자는 해결을 위한 대화가 중심이고 여자는 공감을 위한 대화가 일상적이다. 이것은 남녀 간의 차이이면서 각각의 장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자가 엄마가 되어 자녀와 대화할 때는 여성으로서의 강점을 일시적으로 잃어버린다. 평소 여자들끼리 모여서 그렇게 잘하던 공감의 대화가 자녀와의 대화에서는 사라진다. 마치 남자처럼 아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목적이 강해진다. “아, 심심해” 아이가 이렇게 말하면 엄마는 “그럼 나가서 놀다 와”, “책 읽으면 되지” 이렇게 해결책을 말한다. “학교 가기 정말 싫다” 아이가 이렇게 중얼거리면 “학생이 학교 안 가고 어딜 가게?” 이렇게 훈계한다. 이런 식의 대화가 지속되면 아이는 엄마에게 말을 할 이유를 느끼지 못한다. 엄마에게서 돌아올 대답이 너무나 빤하기 때문이다. 나의 말을 들어주기보다는 내 말을 평가하여 잘잘못을 지적하는 사람에게 누군들 다시 대화를 하고 싶어 하겠는가. 부모가 공감의 대화를 주로 할 때 아이는 늘 부모에게 조언을 구하지만, 부모가 늘 해결책을 제시할 때 어느 순간부터 아이는 부모의 해결책을 거부한다. 공감은 존중의 표현이고 해결은 나에 대한 무시의 표현이라 느끼기 때문이다. 나는 자녀의 양육만큼은 엄마가 아빠보다 월등히 우수하다고 생각한다. 그녀에게는 남자에게 부족한 공감의 유전자가 선천적으로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Switch to our mobile si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