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따뜻한 부모가 될 수 있도록 돕습니다. 현명한 학부모가 될 수 있도록 돕습니다.
  • 글도 쓰고 강연도 합니다.
  • 제 트위터는 @itmembers, 페이스북은 www.facebook.com/itmembers입니다.
  • 네이버 블로그는 charen.kr입니다. 최신 글은 네이버 블로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 요즘 중국차에 푹 빠져 있는데, 중국차에 대한 얘기도 네이버 블로그에서 전해드립니다.
  • [주역11] 세상을 읽는 64개의 범주

    Posted on : 2006-09-12 | By : SON BYOUNGMOK | In : 동양고전 이야기, 손병목의 독서노트

    태그:, , ,

    0

    6비트 점술서에서 철학서로

    앞에서 괘, 효, 괘사, 효사, 십익 등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지금 전해지는 <주역>은 이 모든 것이 통합된 것인데, 처음부터 이 모든 것들이 갖추어져 있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아마 처음에는 음양을 나타내는 부호인 효만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효를 몇 개 붙여 괘를 만들고, 여기에 설명을 붙인 괘사와 효사가 만들어졌을 것입니다.

    <주역>을 구성하는 최소 단위는 효입니다. 이어진 선(一)과 끊어진 선(- -), 딱 두 종류입니다. 아마 인간이 혼동 상태에서 처음으로 눈을 뜨게 되면서 낮과 밤, 남자와 여자처럼 이원적인 형태의 분별이 생겼을 것입니다. 비록 아주 초보적이기는 하지만 모든 인식의 출발이기도 합니다. 마치 컴퓨터가 정보를 표현하고 처리하는 최소 단위가 0, 1로 이루어진 ‘비트’인 것처럼 말입니다.

    컴퓨터는 0과 1이라는 단 두 개의 수만으로도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8비트를 1바이트라고 합니다. 0,1,1,0,1,1,0,1 과 같이 8개의 이진수로만 구성되어 있습니다. 8비트로 표현할 수 있는 정보는 28이므로 256가지입니다.
    반면 <주역>의 괘는 6개의 효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26인 64가지만 표현할 수 있습니다. 6비트 컴퓨터라 볼 수 있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8비트 컴퓨터보다 못한 셈이죠. 그러나 인간에게는 무한한 상상력이 있습니다. 64개의 대표 코드(=괘)에 대표적 특징(=괘사)을 부여하고, 코드를 이루고 있는 여섯 개의 비트(=효)마다 자세한 설명(=효사)을 달아 놓았습니다.

    가끔 이런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효를 6개 쌓아 하나의 괘를 이루어 64가지 괘를 만들 수 있다면, 그것을 다시 두 번 쌓으면 4,096가지의 괘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면 점의 정확도가 매우 높아질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아마 과거에 분명 이런 시도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64가지를 넘어선 괘의 구성은 오히려 인간에게 더 혼란을 줬을 것입니다. 너무 복잡해서 익히기가 힘들었을 것입니다. 4,096가지에 여섯 개의 효를 또 각각 설명하면 자그마치 24,576가지의 효가 생깁니다. 익혀서 활용하기에는 거의 불가능한 숫자입니다. 또한 가짓수가 많을수록 점을 맞힐 확률은 오히려 줄어듭니다. 가급적 모호한 말로써 여러 상황에 두루 통할 수 있는 점괘가 나와야 합니다. 앞에서 살펴본 ‘바넘 효과’는 그 설명이 모호할수록 더욱 효과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8괘는 복희씨가 만들고, 괘사와 효사는 주나라 문왕과 주공이 만들었다고 합니다. 여기에 공자가 십익을 추가하여 현재의 <주역>이 완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십익을 모두 공자가 만들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아마 공자의 제자들, 즉 유가에서 많은 작업을 했을 거라는 추측만 있을 뿐입니다. 십익이 있기 전까지 <주역>은 순전히 점복서의 역할을 했던 것 같습니다. 여기에 철학적인 성격이 농후한 십익이 추가되면서 점점 점복서에서 철학서로 변모하게 되었습니다.

    <주역>이 철학서로 변모하는 과정 중에서 특히 전국시대를 거치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합니다. 전국시대 수많은 학파가 있었는데, 그 중 음양가와 도가학파의 영향을 받아 <주역>을 음양의 원리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유가는 이를 더욱 확장하여 인간의 당위 규범까지 규정하게 됩니다.

    하늘, 못, 불, 우레, 바람, 물, 산, 땅 등 <주역>의 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초기에는 자연철학적 성격이 강했습니다. 이것을 철학적으로 해석하면서 지나친 관념을 덧칠한 감이 없지 않으나 <주역>이 철학서로 발돋움한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이제 <주역>은 더 이상 점을 치고 해석하는 도구가 아닌, 세상을 해석하는 64개의 코드로 거듭나게 됩니다. 아리스토텔레스식으로 표현하자면 판단을 위한 64개의 ‘범주’가 생긴 것입니다.

    세상을 읽는 64개의 범주

    범주는 영어로 카테고리(category)라고 씁니다. 그리스어 ‘kategorein’ 유래했습니다. 원래는 법률 용어였습니다. 고소장 쓸 때 누가, 언제, 어떤 행동을 했는지에 대해 조목조목 나눠 쓰듯이 사물을 분류해서 정리한다는 뉘앙스를 가지고 있습니다. 카테고리를 번역한 단어인 범주|範疇|는 <서경|書經|>의 홍범구주|洪範九疇|*라는 말에서 따왔습니다.

    범주라는 말을 철학적으로 처음 사용한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입니다. 그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10개의 범주로 구분했습니다. 오로지 그것 자체로 존재하는 ‘우시아’와 그로 인해 생기는 나머지 9개의 범주로 나누었습니다. 예를 들어, 손병목이라는 사람이 있어야 손병목의 얼굴 색깔이 있고 머리 모양이 있을 수 있습니다. 철수와 영희가 연애를 한다면, 철수와 영희가 있어야 둘 사이의 연애라는 ‘관계’가 생기게 됩니다. 이때 손병목이나 철수, 영희는 그 자체로 존재하는 ‘우시아’이고 나머지는 이에 따라오는 범주들입니다.

    ‘관계’라는 말은 동양 세계에서는 매우 낯익은 개념입니다. 취업을 하기 위해 자기소개서를 쓰는데, ‘저는 서울에서 태어나 자상한 아버지와 어머니 밑에서 자랐으며 형과 동생이 한 명씩 있고…’와 같이 씁니다. 이것을 서양 사람들이 보면 매우 황당해할 것입니다. ‘자기 소개서’에 정작 ‘자기’ 이야기는 없고 온통 ‘관계’ 이야기밖에 없으니 말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살면서 너무나 ‘관계’를 중시하며 살았습니다.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문화적인 특징이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이야기가 조금 샜습니다만 서양 철학사상 처음으로 ‘관계’에 철학적 의미를 부여한 사람이 아리스토텔레스입니다. <주역>은 처음부터 끝까지 변화와 관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만약 아리스토텔레스가 동양에 살았다면 주나라 문왕이나 주공, 공자와 같이 <주역>의 발전에 큰 도움을 주었을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열 개의 범주로 세상을 설명했다면, 스콜라 철학에서는 여섯 개의 범주로, 데카르트는 세 개의 범주로 나누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주역>은 64괘로 세상 이치를 설명합니다. 괘는 <주역>에서 기본적인 범주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 데카르트, 칸트, 헤겔 등이 규정한 범주와는 그 수에서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많은 범주를 가지고 있는 셈입니다.

    혹시 주위에서 ‘단세포’라는 소리를 듣는 분이 계시다면 필히 <주역>을 공부해야 합니다. 단세포라는 말은 세상을 판단하는 범주가 겨우 하나밖에 없는 꽉막힌 사람이라는 뜻이니까요. 혈액형별 성격 분류를 맹신하여 만나는 사람조차 혈액형에 따라 가리는 사람에게도 <주역>은 필요합니다. 이 사람에게는 사람을 판단하는 네 개의 범주만 있을 뿐이니까요.

    홍범구주|洪範九疇|
    ≪서경|書經|≫ 주서(周書)의 편명인데, 원래는 홍범입니다. 홍범은 세상의 큰 규범이라는 뜻이고, 그 내용의 핵심이 구주인데, 구주는 아홉 개의 조항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흔히 홍범구주라고 표현합니다. 주나라 무왕(武王)이 기자(箕子)에게 선정(善政)의 방법을 물었을 때 기자가 홍범구주로 교시하였다고 전해집니다. 원래 홍범구주는 전설 속의 삼황오제 중 하나인 중국 하(夏) 나라 우(禹) 임금이 홍수를 다스릴 때 하늘로부터 받은 낙서(洛書)를 보고 만들었다고 합니다.
    9개의 조항은 오행(五行)•오사(五事)•팔정(八政)•오기(五紀)•황극(皇極)•삼덕(三德)•계의(稽疑)•서징(庶徵)•오복(五福)과 육극(六極)입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경복궁의 강녕전의 사연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정도전이 경복궁에 대하여 아뢰기를, “…강녕전에 대하여 말씀드리면, ≪서경≫ 홍범구주의 오복 중에 셋째가 강녕입니다. 대체로 임금이 마음을 바루고 덕을 닦아서 황극을 세우게 되면, 능히 오복을 향유할 수 있으니, 강녕이란 것은 오복 중의 하나이며 그 중간을 들어서 그 남은 것을 다 차지하려는 것입니다.…” 하였습니다.

    [주역10] 확률 99.9% 주역 점

    Posted on : 2006-09-11 | By : SON BYOUNGMOK | In : 동양고전 이야기, 손병목의 독서노트

    태그:, , ,

    0

    사람들은 매우 구체적인 현실 문제로 점을 칩니다. 옛날에 점을 칠 때, 지금 이웃 나라와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 좋을지 아닐지에 대해 점을 쳤습니다. 그러나 점을 쳐서 ‘전쟁을 일으키라’는 직접적인 점괘를 얻을 수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식으로 구체적인 현실 모두에 대응되는 점괘를 만들려면 수천 수백 가지로도 어림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점괘는 여러 사태에 두루 통용될 수 있는 일반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자유로운 해석이 가능해야 합니다. 따라서 매우 추상적입니다. <주역>은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유일하고 절대적인 해석이 없었습니다. <주역>을 통해 만 사람이 만 가지 해석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어쩌면 이 글도 그 중의 하나인지도 모릅니다.

    비단 <주역>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대개의 점술서는 이와 비슷한 이치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두루뭉술함, 이것이 바로 모든 점술서의 공통점입니다. 그런데 왜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점괘를 신봉하며, 마치 그 점괘가 자신을 위한 점괘인 것처럼 여기고 있을까요?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점과 상, 명의 차이를 알아야 합니다.

    점은 결정적인 선택의 순간에 필요한 것입니다. 무언가를 선택해야하는 고비에서 점을 칩니다. 이런 면에서 점은 상|相|이나 명|命|과는 다릅니다. 관상, 수상 등의 상|相|은 신체에 드러난 모습을 보고 그 사람의 타고난 운명을 알아냅니다. 사람의 모습 속에 그 사람의 미래가 담겨있다고 믿습니다. 명|命|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주명리학이 바로 명을 판단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태어난 시간에 의해 그 미래가 결정된다는 생각입니다. 상과 명, 둘 다 ‘운명’에 대한 믿음에서 출발합니다.

    반면 점은 선택의 갈림길에서 필요한 것입니다. 사주는 타고난 운을 보는 것이기 때문에 선택의 갈림길에서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청년기에 고생하다가 중년에 운이 트일 것이다’라는 답밖에 얻을 수 없습니다. 중년에 운이 트인다고 했는데, 계속 실패한다면? 아마 그 사주를 본 사람은 ‘아직 중년이 끝나지 않았으니 더 기다려보라’는 말만 할 것입니다. 20년간 회사를 다니던 사람이 인생에서 처음으로 사업을 해볼까 고민하고 있을 때, 새 사업을 시도할까 말까를 선택할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점입니다.

    <좌전>에 이르기를, “점으로써 의심을 내려고 한다. 의심하지 않을 바엔 무엇 때문에 점을 치겠는가?”라고 했습니다. 즉 무언가 결정적으로 선택이 필요한 순간에 점을 치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점은 기본적으로 동전 던지기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확률로 따지자면 늘 50%입니다. 잘될 확률도 50이요 안될 확률도 50입니다. 사실 엄청난 확률입니다. 어렸을 때 길을 가다가 갈림길이 나오면 어디로 갈지를 결정하기 위해 침 튀기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왼손바닥에 침을 뱉고 오른손 손가락 두개를 모아 탁 칩니다. 침이 튀기는 쪽으로 갑니다. 이것이 바로 점의 원초적이자 근본적인 모습입니다.

    그런데 동전을 던지든 침을 튀기든, 문제는 할 때마다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역>을 이용한 점도 마찬가지입니다. 댓가지를 뽑을 때마다 점괘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주역>은 이를 예방할 장치를 만들어두고 있습니다.

    <좌전>에 이르기를, “처음 점을 치면 알려준다. 다시 하면 그것은 모독하는 것이다. 모독하면 알려주지 않는다.”라고 했습니다. 즉 어떤 선택의 순간에 점은 딱 한 번만 치라는 것입니다. 만약 점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다시 친다면 점을 모독하는 행위라는 것입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점괘가 나온다고 다시 보려한다면 애초부터 점을 치지 말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점은 스스로 도저히 결정하기 힘든 순간에 최후의 결단을 내리기 위한 것이니까요.

    따라서 이 순간 점의 확률은 50%를 초과하게 됩니다. 즉 원래의 확률 50%에다, 점괘를 믿고 그대로 실천하려는 의지가 더해져 50% 이상의 성공률을 확보한 것입니다. 머릿속에 이미 선택에 대한 확신과 성공에 대한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합니다. 이럴 경우 십중팔구 성공하게 됩니다. 맥스웰 몰츠의 《사이코 사이버네틱스》에 ‘성공 메커니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미래의 일을 두고 머릿속에서 이미 그렇게 된 것처럼 상상하기만 해도 실제 그렇게 되어간다는 것입니다.

    이런 까닭에 <주역> 점은 선택에 대한 확신을 주는 장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사로이 보자면 한 개인의 선택의 문제입니다. 한 사람이 어떤 선택을 할 때 확신을 주어 그 선택을 따랐을 때의 일의 성사 확률을 100% 가까이 끌어올리기 위한 장치라고 볼 수 있습니다. 평소 맘에 두고 있던 여인네가 이쁘기도 하거니와 혼인하면 길하다는 점괘를 얻었다면 필사적으로 노력하여 반드시 이루고야 말 것입니다.

    만약 이것이 국가 중대사를 결정하는 일이라면 더욱 큰 역할을 합니다. <서경>의 홍범구주를 보면, 나라에 의난|疑難|이 있을 때 임금은 먼저 자기 자신에게 묻고, 그 다음에는 조정 대신에게 묻고, 그 다음은 백성들에게 묻었다고 씌어 있습니다. 그래도 의난이 풀리지 않고 판단할 수 없다면, 그제서야 복서|卜筮|에 묻는다고 씌어 있습니다. 복|卜|은 짐승 뼈나 거북 등가죽을 태워 얻은 점을 말하고, 서|筮|는 산가지를 뽑아 길흉을 점치는 것을 말합니다. 바로 <주역> 점에 해당됩니다.

    이처럼 점은 인간의 지혜를 모두 동원해도 풀리지 않을 때 최후에 기대는 것입니다. 따라서 고대의 점은 나라의 모든 의견을 한 곳으로 모으는 중대한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나온 점괘가 조정 대신과 백성의 의견과 일치하면 이것을 대동|大同|이라고 했습니다. 온 세상이 번영하여 화평하게 되는 것을 대동 세상이라고 하는데, 바로 여기서 유래했습니다. 모두가 하나 되는 잔치라는 뜻을 가진 대학교의 대동제|大同祭|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역09] 점술서 <주역>, 분서갱유에서 살아남다

    Posted on : 2006-09-07 | By : SON BYOUNGMOK | In : 동양고전 이야기, 손병목의 독서노트

    태그:, , ,

    0

    이 글은 [주역07] 주나라 점괘 데이터베이스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그런데 가끔 <주역>을 해설한 책을 보면, <주역>은 보편타당한 원리를 담은 철학서이지 점술서가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송나라 때 정이천이라는 학자는 <주역>에서 철저하게 점술적인 요소를 빼고 의리|義理|의 관점에서 해석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주역>이 점술서였다는 사실을 감출 수는 없는 것입니다. 진시황의 분서갱유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말입니다.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한 것은 진나라였습니다. 통일 후 34년, 진시황의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일부에서는 여전히 비판하는 세력이 있었는데, 그 선봉에 유가가 있었습니다. 유생들은 진제국의 철저한 군현제 강행을 반대하고 봉건제 부활을 주장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시황제는 일단 그 의견을 조정의 공론에 붙였습니다.

    철저한 법가 원칙으로 일관한 승상 이사|李斯|는 이에 반대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나중에라도 사적인 학문으로 정치를 비판하는 일이 없도록 근본적인 대책을 세웁니다. 그래서 나온 대책이 진나라 역사서 이외의 사서는 모두 불태우고, 《시경》 《서경》을 포함한 다른 제자백가의 책을 가지고 있는 자는 30일 이내에 모두 관에 신고하여 불태우도록 했습니다. 이를 어기면 노비로 삼았습니다. 그래도 정신을 못차린 채 옛것을 들먹이며 현실 정치를 비방한 자는 다리를 잘라버렸습니다. 단 의약·점복·농업 등 실용 서적은 제외했습니다. 이런 초강경 종합 대책을 시황제의 승인 하에 실행에 옮겼습니다. 이것이 분서|焚書| 사건입니다.

    그런데 이듬해에 불로장생약을 찾으러 갔던 방사|方士|들이 도망을 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화가 머리 끝까지 오른 시황제는 이들을 잡는다는 핑계로 유생 460여명을 체포해 그대로 구덩이에 묻어버렸습니다. 산 채로 말입니다. 이것이 갱유|坑儒| 사건입니다. 분서 사건과 함께 일러 분서갱유|焚書坑儒|라 합니다.

    이런 사상 초유의 사건을 겪으면서 웬만한 책은 모두 불살라졌습니다. 그런데 <주역>만큼은 살아남았습니다. 의약·점복·농업 등 실용 서적은 남겨두었다고 했는데, <주역>은 점복서로 분류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점치는 책을 실용서라 표현하니까 좀 이상한 느낌이 들지 않나요? 대개 우리는 ‘점 = 미신’으로 알고들 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수천 년 전에 씌어진 <주역>을 읽고 있습니다. 고전 독법의 첫 번째 원칙, 현재의 눈으로 과거를 재단하지 말자, 잊지 않으셨겠죠?

    고대의 점의 의미는 지금과는 매우 달랐습니다. 인간의 지혜가 그리 발달하지 못했던 고대에는 세상 변화가 모두 신기했습니다. 계절이 바뀌고, 기후가 바뀌고, 천둥과 지진, 일식과 월식이 일어나는 까닭을 알 수 없었습니다. 황하가 범람하여 홍수가 일어나고, 툭하면 전쟁이 일어나는 현상도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사실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까닭을 제대로 안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닙니다. 고대인들은 이 모든 것이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큰일을 할 때는 꼭 하늘에 그 뜻을 물었습니다. 지금 전쟁을 하는 게 좋을지 그렇지 않은지, 심지어 사냥을 하러 갈 때조차도 사냥을 해야할지 말아야할지를 물었습니다. 하늘의 뜻을 묻는 방법이 바로 점|占|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인간의 지혜도 발달하면서 무언가를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반복되는 자연의 변화에서 질서를 발견한 것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사계절의 변화도 당시로서는 매우 큰 발견이었을 것입니다. 계절에 따른 기후의 변화를 알아냈다는 것은 농경사회에서는 획기적인 사건이었을 것입니다. 나아가 상나라 때는 달력을 만들 수 있는 단계까지 이르렀습니다. 이로부터 파종과 수확의 시기를 예측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씨를 뿌려야하는지 말아야하는지 신에게 묻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자연의 질서를 파악함으로써 미래에 대한 예측이 가능해졌습니다. <주역>은 이 시기에 즈음하여 다듬어졌을 것입니다. <주역>의 팔괘가 하늘, 땅, 비, 바람, 우레와 같이 자연의 모습을 띠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당시 <주역>은 혹세무민의 미신서가 아니라 대단히 실용적인 서적일 수 있었습니다.

    [주역08] 보충 – 태극기의 괘는 왜 4개만 있을까?

    Posted on : 2006-09-06 | By : SON BYOUNGMOK | In : 동양고전 이야기, 손병목의 독서노트

    태그:, , ,

    2

    사람들은 역시 점에 더 많은 관심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 글은 <주역>이란 어떤 책인지에 대해 개괄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실제로 점치고 해석하는 방법에 더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당분간 점치는 이야기는 없을 것입니다. 주역의 성립 배경과 철학적인 의미를 파악해보는 시간. 그리고 태극, 음양, 삼재, 사상, 오행, 팔괘, 64괘의 의미와 성립 배경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이 이어질 것입니다. <주역>을 이해하기 위한 배경지식인 셈입니다. 그런 다음 64괘중 한두 개의 괘만 골라 온전하게 뜯어보는 시간을 만들어볼까 합니다. 원래 동전으로 점치는 것은 괘를 전체적으로 살펴보기 직전, 즉 글 전체로 따지면 거의 후반에 나와야 할 내용입니다. 그러나 초기에 시선을 집중하기 위해 앞에 배치한 것입니다.

    동전으로 친 점이 정말 맞을까? 궁금하시면 끝까지 따라오세요(^^). 주역의 점이 왜 그토록 용할 수밖에 없는지 몇 시간 후에 설명드릴 것입니다.

    예전에 MBC 드라마 중에 <다모>가 장안의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아직도 많은 폐인들이 있습니다. 이 드라마의 가장 큰 특징은 ‘사전 제작 드라마’라는 것입니다. 마치 드라마와 같이 미리 다 찍어놓고 방송에 내보낸 것입니다. 매주 급하게 촬영하는 일반 드라마에 비해 완성도가 높겠죠.

    지금 보내드리는 이 독서노트 연재는 사전 제작 드라마가 아닙니다. 다시 읽어보니 중간에 빠뜨린 이야기가 있어 마음이 불편합니다. 아무래도 빠뜨린 이야기를 보충하고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야겠습니다.

    1. 팔괘 외우는 방법

    앞에서 <주역>을 공부하기 위해서 팔괘는 꼭 외워야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달랑 도표 하나 던져주고 외워야 된다고 했던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쉽게 외울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옛사람이 외던 방식이라도 알려드리는 것이 예의인 것 같습니다.

    옛사람들은 주역의 괘를 욀 때 두 가지 단계를 거쳤습니다.

    먼저 팔괘의 괘명과 괘상을 순서대로 나열하는 방법입니다.

    일건천, 이태택, 삼리화, 사진뢰, 오손풍, 육감수, 칠간산, 팔곤지

    풀어 쓰자면, ‘일건천’이란 ‘1은 건|乾|이요 하늘|天|’이라는 뜻입니다. 나머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래 표를 참조하세요.

    다음으로는 괘의 모양까지 암기해야 합니다. 괘의 모양을 손가락으로도 표시할 수 있다고 했죠. 그때 엄지 손가락을 붙이면 양, 떼면 음이라고 했습니다. 붙인다는 뜻으로 연|連|, 뗀다는 뜻으로 절|絶|자를 사용하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건삼련, 태상절, 이허중, 진하련, 손하절, 감중련, 간상련, 곤삼절

    풀어 쓰자면, ‘건삼련’이란 ‘건|乾|은 세 개|三|가 모두 이어져있다|連|’는 뜻입니다. ‘태상절’은 ‘태|泰|는 가장 위쪽|上|이 떨어져있다|絶|’가 됩니다. ‘이허중’은 ‘이|离|는 가운데|中|가 비어있다|虛|’는 뜻이 됩니다. 즉 나머지는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죠. 이런 식으로 진은 아래쪽만 연결되어 있고, 손은 아래쪽만 떨어져 있고, 감은 가운데만 연결되어 있고, 곤은 모두 떨어져있다는 뜻이 됩니다.

    2. 태극기의 4괘

    우라나라 태극기에 네 개의 괘가 그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건,곤,감,리일까요? 태,진,손,간 괘는 왜 뺐을까요?

    우선 태극기에 그려져 있는 네 개의 괘를 보세요. 그리고 공통점을 찾아보세요.

    모르시겠다면 위 그림을 거꾸로 한번 보세요.

    바로 보나 거꾸로 보나 모양이 똑같습니다. 태극기에는 이처럼 팔괘 중에서 뒤집어도 같은 모양의 괘만 네 개를 골라 실었습니다. 나머지 괘는 어떤 식으로든 치우친 모양입니다.

    뜻으로 보자면, 건곤은 하늘과 땅, 감리는 물과 불이 됩니다. 물론 뜻으로 풀자면 한없이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 동서남북의 방위로도, 인의예지 등 4덕으로도 풀 수 있습니다. 그러나 최초로 태극기를 만든 사람이 정확하게 이 모든 것을 감안하고 만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치우친 모양이 없는 네 개의 괘를 골라 나름대로의 의미를 부여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태극기 얘기가 나왔으니 태극의 모양에 대해서 하나만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원래 예부터 전해오는 태극의 모양은 좌우로 나뉜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태극기 속의 태극의 모양은 상하로 나뉘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 모양이 남북 분단을 상징한다고 풀이합니다. 웃기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식의 해석이라면 원래 모양대로 좌우로 나뉘었다면 동서 분단이 돼야하는 상황입니다. 나중에 태극에 대해 따로 설명드리겠지만, 태극은 회전하는 모양입니다. 시작도 끝도 없는 무극의 세계에 양과 음이 나뉘는 모양을 담고 있습니다. 양과 음은 늘 조화를 이루며 순환하는 모습이 바로 태극입니다.

    3. 숫자 9와 6의 비밀

    양(一과) 음(- -)을 표시할 때, 양은 九, 음은 六으로 쓴다고 했습니다. 왜 수많은 숫자들 중에서 9와 6일까요.

    이것은 하도|河圖|라는 그림에서 유래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5천여년 전, 전설 속의 삼황 중의 한 사람인 복희씨 때의 일입니다. 황하 주위에 무슨 구경거리가 난 듯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렸습니다. 복희씨가 나아가 살펴보니 그 물에는 머리는 용이요 몸은 말의 형상을 한 용마|龍馬|가 있었습니다. 그 용마의 등에 1에서 10까지의 숫자를 뜻하는 모양이 그려져 있었는데, 이것을 하도|河圖|라고 합니다. 이를 본 복희씨가 ‘우주 만물이 오직 1에서 10까지 10수 안에 존재하고 있다’고 깨달았다고 합니다.

    우주 안의 수는 1에서 10까지인데, 1에서 5까지를 근본이 되는 수, 만드는 수라고 해서 생수|生數|라 합니다. 6에서 10까지는 이루어진 수라는 뜻에서 성수|成數|라고 합니다. 말뜻에서부터 생수가 근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생수 중에서 1,3,5 홀수는 양을 뜻하고, 2,4의 짝수는 음을 뜻합니다. 홀수는 짝이 없으므로 무언가 부족함을 느끼는 숫자입니다. 따라서 움직이려는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양의 성질입니다. 반면 짝수는 안정된 숫자입니다. 짝을 이루고 있으니 움직이려는 성질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음의 성질입니다. 양을 나타내는 1,3,5의 숫자를 합치면 9가 됩니다. 그래서 9는 양을 대표하는 숫자가 됩니다. 음을 나타내는 숫자 2,4를 합치면 6이 됩니다. 그래서 6은 음을 대표하는 숫자가 됩니다.

    그런데 양과 음은 끊임없이 변합니다. 양이 극에 달한 숫자가 9, 음이 극에 달한 숫자가 6입니다. 그래서 9를 늙은 양이라는 뜻의 노양|老陽| 또는 태양|太陽|이라 하고, 6은 노음|老陰| 또는 태음|太陰|이라고 합니다. 우연의 일치인지, 아라비아 숫자 9를 뒤집으면 6이 됩니다. 양이 극에 달하면 음으로 변하는 모습입니다.

    (다음 시간에…)

    [주역07] 주나라 국립 점괘 데이터베이스

    Posted on : 2006-09-04 | By : SON BYOUNGMOK | In : 동양고전 이야기, 손병목의 독서노트

    태그:, , ,

    1

    데이터베이스라는 말이 있습니다. 불과 십여 년 전만 해도 이 말은 컴퓨터를 전공하는 사람들만 알아들을 수 있는 용어였습니다. 지금은 누구나 한번쯤 들어보았 것입니다. 인터넷을 연결하면 으레 처음 접속하는 곳이 검색 사이트입니다. 검색 사이트는 엄청난 정보를 쌓아놓은 데이터베이스의 전형입니다.

    데이터베이스 관리 프로그램 중에 ‘오라클(oracle)’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꽤 유명한 프로그램입니다. 비싸기도 하구요. 오라클의 우리말 뜻은 ’신탁|神託|’입니다. 옛날에는 인간이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를 곧잘 신|神|에게 물었습니다. 이때 신이 응답한 것을 신탁이라고 합니다.

    신탁의 초기 형태가 점|占|입니다. 신의 뜻을 직접 알 수 없어서 점을 쳤습니다. 별을 보고 신의 뜻을 알아차리는 점성, 꿈을 해몽하는 꿈점, 짐승의 뼈나 거북의 등껍질을 이용하는 점 등 여러 가지 방법이 있었습니다. 지역에 따라 달랐습니다. 물론 아무나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신의 뜻을 읽을 수 있는 특수한 위치의 사람만이 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을 샤면(shaman), 영매자|靈媒者|라고 합니다.

    중국 허난성|河南省| 샤오툰촌|小屯村|에 있는 고대 상나라의 수도인 은|殷|의 유적을 은허|殷墟|라고 합니다. 은허에서 출토된 유물 중에 갑골문자는 매우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이 갑골문자는 고대 상나라의 점술사가 왕가를 위하여 점을 친 점괘의 기록입니다. 갑골|胛骨|은 귀갑|龜甲|·우골|牛骨|의 줄임말입니다. 거북의 등가죽과 소뼈입니다. 상나라 민족은 아마도 수렵과 목축을 주로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신의 뜻이 거북이나 짐승의 뼈에 머물러 있다고 생각했겠죠.

    반면 일찍이 농경생활에 들어간 주|周|민족은 신탁을 위해 시서|蓍筮|라는 방식을 사용했습니다. 시|蓍|는 풀의 일종입니다. 이 풀을 이용해서 점|筮|을 치는 것을 시서라고 합니다. 후세에 와서 이 풀을 다루기가 쉽지 않아 대나무 가지로 바꾸었습니다. <주역>에는 댓가지로 점치는 방법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로부터 수천 년이 흘렀습니다. 저는 댓가지조차 구하기 어려워 주머니 속의 동전으로 점을 치고 있습니다. 수렵인은 짐승 뼈로, 농경인은 풀과 댓가지로,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를 살고 있는 저는 동전으로.

    여하튼, 어떠한 방식으로든 고대인들은 신의 뜻을 물었고, 그 중 일부를 기록했습니다. 그 기록 중의 단연 으뜸은 <주역>입니다. 수천 년을 이어온 한자|漢字|의 힘이기도 합니다.

    <주역>에는 고대인들이 신의 뜻이라고 여겼던 것들이 담겨 있습니다. The oracle of oracle, 신탁 데이터베이스. 이것이 바로 <주역>입니다. 신탁은 곧 예언입니다. 사람의 운명을 예언한다는 역술가들의 전공 필독서가 <주역>인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참, 영화 <매트릭스>에 등장하는 예언자 이름도 ‘오라클’이었죠, 아마.

    Switch to our mobile si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