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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청, 공부하게 만드는 마법

    Posted on : 2008-06-17 | By : SON BYOUNGMOK | In : 짧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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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부모는 자녀가 공부 잘하기를 바란다. 마찬가지로 모든 학생은 공부 잘하기를 원한다. 둘의 바람은 정확하게 일치한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일까? 많은 부모들이 자녀가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서 속이 상한다. 자녀는 부모의 그런 모습이 심하게 못마땅하다. 쌍방의 문제인 것처럼 보이지만 해결의 열쇠는 부모가 쥐고 있다.

    부모에게서 가장 듣기 싫은 말이 어떤 것인지 학생들에게 물어보자. 물어볼 것도 없이 “공부하라”는 말일 것이다. 지금의 부모들도 과거에 똑같은 마음이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생각이 바뀐다. 10년 전 모 일간지에서 성인들을 대상으로 중․고등학교 시절로 되돌아간다면 무엇을 제일 하고 싶은지 설문 조사를 한 적이 있었다. 놀랍게도 학창 시절에 그토록 지겨워하던 공부가 압도적으로 1위(66.9%)를 차지했다. 어릴 때는 공부하라는 말이 싫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인생에서 공부가 매우 중요함을 느꼈다. 세월을 돌릴 수만 있다면 제대로 공부해보고 싶다. 이 두 가지 경험을 모두 가지고 있는 부모가 자녀 공부 문제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다. 자녀는 공부를 잘하고는 싶지만 아직은 공부하라는 잔소리는 싫은 때이다. 어떻게 하면 자녀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자녀를 공부 잘할 수 있게 만들 수 있을까?

    어느 입시 컨설팅 업체에서 서울대생 3000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했다. 그 중에 “수험생활에서 도움이 되었던 외부요소가 무엇이었는가?” “반대로 최대의 방해물이 무엇이었는가?”라는 질문이 있었다. 도움 되는 외부요소 중 6위가 부모님이었다. 그런데 방해물의 3위가 또한 부모님이었다. 수험생의 최대 방해물이 부모, 그 중에서 특히 어머니라고 답한 사람이 만약 자신의 자녀였다면 아마 심한 배신감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현실이다. 누구에게는 도움이 되고, 누구에게는 심한 방해물이 되는 부모. 어떨 때는 도움이 되고 또 어떨 때는 방해가 되는 부모. 이 둘의 차이에 공부 갈등 해결의 실마리가 있다.

    이제 본론이다. 공부는 기억게임이다. 기억은 머리에서 한다. 자녀의 머리가 공부의 주체다. 따라서 공부는 결코 부모가 대신할 수 없다. 자녀의 머리를 공부 잘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 주는 것이 부모 역할의 전부다. 어떻게 해야 자녀의 머리를 공부 잘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들까? 여기에는 약간의 두뇌과학 지식이 필요하다. 아이들 뒷바라지하기도 힘든데 이런 것까지 알아야 되나 싶다. 그러나 알아두는 것이 좋다. 무심코 내뱉는 말 한마디에도 두뇌과학의 비밀이 숨어 있다. 이것을 아느냐 모르느냐가 대화의 질을 규정한다. 부모와 자녀 사이의 신뢰와 불신을 규정한다.

    두뇌의 기본 속성은 망각이다. 지금 이 순간 수많은 정보가 육감을 통해 뇌로 들어온다. 보고 듣고 느끼는 이 모든 것을 컴퓨터에 집어넣는다면 단 몇 초간의 정보만으로도 대용량 하드디스크가 꽉 찰 것이다. 두뇌는 이 많은 것을 모두 기억하지는 않는다. 아주 일부만 기억한다. 두뇌는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한다. 뇌 속에서 활동하는 여러 물질 중 기억과 관련하여 가장 효과가 강한 물질은 ‘베타엔돌핀’이다. 베타엔돌핀의 화학 구조는 모르핀과 비슷해 마치 마약과 같다. 진통 효과가 있고 장시간 공부에 견딜 수 있는 인내력도 갖게 한다. 이 베타엔돌핀은 재미있다고 느낄 때, 긴장이 완화된 상태일 때, 또는 긍정적인 생각을 할 때 분비된다. 담당 선생님이 좋으면 그 과목이 즐거워져서 공부가 잘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열심히 공부했는데 막상 시험장에서 긴장하여 답을 못 쓸 때가 있다. 긴장할 때는 노르아드레날린이 분비된다. 이것은 베타엔돌핀 활동을 억제한다. 노르아드레날린은 부정적인 사고일 때도 많이 분비된다. 부모의 역할은 자녀가 공부를 즐거워하고 평상시 긍정적인 생각을 갖도록 만드는 데 있다. 과학적으로 보자면 자녀의 뇌 속에서 노르아드레날린 분비를 억제하고 베타엔돌핀이 증가하도록 만드는 데 있다.

    베타엔돌핀을 촉진하여 공부하기 쉽게 만드는 말이 있고, 반대로 노르아드레날린을 분비하여 공부하기 싫은 상태로 만드는 말이 있다. 자녀에게 하는 말은 크게 이 두 가지 중 하나에 속한다. 그런데 이 말을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똑같은 말이라도 어떤 때는 긍정적으로 느끼기도 하고 부정적으로 느끼기도 한다. 공부하라는 말을 잔소리로 생각하는 자녀도 있고, 부모가 나를 정말 위해서 하는 말이라고 느끼는 경우도 있다. 비밀은 바로 ‘정서’의 힘이다. 두뇌에서 정서를 관장하는 기능이 이성이나 논리를 관장하는 기능을 우선한다. 좋아하는 사람의 말은 모든 것이 옳게 들리고, 싫어하는 사람의 말은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을 수 없다. 정서의 문을 열지 않고는 대화 자체가 무의미하다. 마음의 문을 연다는 말은 매우 시적인 표현이지만 이처럼 과학적인 원리를 담고 있다. 자녀가 마음의 문을 열지 않고서는 그 어떤 대화도 잔소리이거나 명령으로만 받아들인다. 어떻게 전달해야 나의 진심을 전달하고, 어떻게 해야 스스로 공부하는 아이로 만들 수 있을까? 부모도 공부를 해야 한다. 그 중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자녀와의 대화법이다.

    부모교육의 선구자인 토머스 고든은 대화의 제1원칙을 ‘적극적인 경청’이라 했다. 부모의 말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려면, 그 전에 자녀의 말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여야 한다. 공감해야 한다. 그래야 자녀가 정서의 문을 연다. 부모의 논리를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 경청하라, 그럴 때 자녀는 마음의 문이 열고, 부모의 말을 받아들이며, 긍정적인 사고를 하게 되어 공부를 할 수 있는 준비 상태를 만든다. 물론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자녀를 공부 잘하게 만드는 길이 비록 멀지만 이것이 시작이어야 한다. 자녀가 마음의 문을 열고 베타엔돌핀이 넘치는 상태라면 방법은 많다.


    이 글은 <한겨레>에 기고한 글로 2008년 6월 16일자 교육섹션 3면에 커버스토리로 본문 부분만 게재되었습니다.

    기사 원문 보기 (클릭) : 아이의 말 경청해주면 ‘공부 호르몬’이 솟아요

    촌지는 아직도 ‘진행중’이다.

    Posted on : 2008-05-28 | By : SON BYOUNGMOK | In : 짧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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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과학기술부의 ‘학교자율화계획’ 중에 ‘촌지 안 주고 안 받기 운동’의 폐지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마 더 이상 이 운동이 필요할 만큼 심각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부모2.0(www.bumo2.com)에서 지난 달 ‘학교자율화계획’의 전반적인 찬반 의견과 특히 그 중에서 어떤 항목을 반대하는지에 대해 설문조사를 진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때마침 <시사저널>에서 촌지 실태에 대해 기획 취재를 한다고 하여 취재 협조를 위해 촌지 문제만을 떼어 따로 긴급하게 설문조사를 실시하였습니다.

    원래 촌지(寸志)는 ‘마음이 담긴 작은 선물’을 뜻합니다. 그래서 촌의(寸意)라고도 하고 촌정(寸情)이라고도 했습니다. 그러던 것이 어느 순간 ‘뇌물’이라는 의미로 바뀌었습니다. 아마 지금의 부모들 중에서는 촌지에 원래 이렇게 소박한 뜻이 담겨 있었음을 알지 못한 사람이 더 많을 것입니다.

    이번 조사 결과 촌지를 실제로 ‘줬다’는 비율이 36.7%로 나왔습니다. 주위 학부모들에게 물어보니 체감지수보다 적게 나왔다는 반응입니다. 이번 설문조사에 참여한 한 학부모 의견입니다.

    “아이의 교육과 촌지를 별개라고 생각하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전 학교 선생님에게 촌지 요구를 받았습니다. 간접적으로 촌지를 요구하는 선생님 모습에 전 당황을 했습니다. 학부모들은 성의껏 돈을 모아서 전달하기로 했고, 전 갈등을 했습니다. 다른 부모들이 촌지를 전달하면 내 아이에게는 불이익이 가는 건 아닐까하는 조바심이 생겼습니다. 전 고심 끝에 돈을 내지 않았습니다. 촌지를 드린다고 해서 저의 아이를 특별하게 돌봐 주신다는 보장도 없고 괜히 나의 조급한 마음으로 아이에게 당당하지 못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직까지 촌지를 요구하는 선생님들이 있다니 실망스러울 뿐입니다. 일부 부도덕한 선생님들 때문에 일선에서 열심히 교육하시는 분들에게까지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했던 촌지 요구사건이었습니다.”

    학교에 근무하시는 어떤 분은 이런 의견을 올리셨습니다.

    “학교에서 근무하다 보면 촌지를 받는 일은 허다합니다. 내가 받고 내 자녀의 선생님께 드리지 않는 것은 뒷간에 다녀와서 뒤를 안 닦은 느낌이랄까? 게다가 같은 동료교사들끼리는 서로 압니다. ‘내가 줬는데 너는 나 안 주냐’라는 마음 갖는 것이 인지상정 아닐까요?”

    이런 의견이 의외로 많았습니다. 촌지를 실제로 ‘줬다’는 비율과 체감지수가 다른 것은 이 때문입니다. 학부모들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거의 모든 학부모가 촌지를 주고받는 현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생각보다’ 적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문제는 촌지를 실제로 ‘줬다’는 비율의 많고적음이 아니라 촌지를 주는 행위가 여전히 공공연한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줬다’는 비율이 37%인데 비해 ‘촌지 안 주고 안 받기 운동’이 폐지될 경우 촌지가 늘어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비율은 78%에 나타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촌지 문제는 어디까지나 쌍방의 문제입니다. 일방적으로 교사들의 자질 문제로 몰아가서는 물론 안 됩니다. 자신의 아이를 잘 봐달라는 의미로 주는 촌지를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학부모도 많습니다. 그래서 촌지 문제 해결을 이야기하다 보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비유를 드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촌지 문제는 명확하게 일대다의 문제입니다. 촌지를 받는 쪽은 한 사람이고 주는 쪽은 여럿입니다. 이럴 때 1차적인 해결책은 받는 쪽에서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촌지 안 주고 안 받기’ 운동입니다. 받는 당사자들의 자정 운동입니다. 스스로 정화되지 않고 도리어 심각해질 때 반발이 따르게 되고, 이것이 시민운동이 되는 것입니다. 비록 아직 촌지를 주고받는 행위가 공공연한 현실이지만 촌지를 주고받지 않겠다는 자정 노력은 마땅히 환영받아야 할 일이고, 보다 더 강력하게 추진되어야 할 일입니다. 오죽했으면 어느 시민단체는 촌지를 주는 학부모도 처벌하자는 내용의 법안까지 국회에 청원했겠습니까? 촌지 관행을 뿌리 뽑기 위해 학교와 학부모 당사자들의 자정 운동이 한참인데 정부가 나서서 스스로 그 운동을 폐기하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관련기사] “스승의 날에 촌지 준 적 있다” 70.1%
    [관련기사] 학부모가 주는 봉급 ‘촌지’ 아이가 볼모 “안 주고는 못 배겨”

    9403 버스 성추행범 탈주 사건

    Posted on : 2007-07-13 | By : SON BYOUNGMOK | In : 짧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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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을 늦게까지 마시는 날에는 새벽까지 운행하는 9403을 많이 이용하는 편이다. 탈 때마다 느끼는 것인데 나같은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나는 잠실에서 타는데, 그 늦은 시간에도 앉을 자리가 없을 때가 많다. 오늘도 예외는 아니어서 잠실에서 겨우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늘 그렇듯이 휴대폰에 알람을 맞춰놓고 잠을 청했다.

    분당에서 잠을 깼다. 20여분 더 가면 내릴 곳이다. 그런데 갑자기 버스 안이 소란해졌다. 바로 뒷자리에 탄 여자 승객이 소리를 쳤다.

    “이 아저씨 계속 몸을 더듬어요. 몇 번이나 뿌리쳤는데 계속 그럽니다. 기사 아저씨 경찰서로 가주세요!”

    7월 13일 새벽 1시 35분. 조용하던 버스 안은 갑자기 술렁거리며 여기 저기서 말이 튀어나왔다.

    “거, 잘못했다고 사과하고 다른 자리로 가세요!”
    어떤 아저씨의 말이었다.

    “아까부터 봤는데요, 계속 집적거렸어요. 다른 자리가 있는데도 일부러 그자리 빌 때까지 기다렸다가 앉았어요. 의도적이에요. 빨리 경찰 불러주세요.”
    버스 뒷편 어느 아가씨의 말이었다.

    기사 아저씨는 바로 경찰서에 전화를 하고 버스를 정차했다. 아마 분당 한솔마을이나 정든마을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경찰은 감감무소식이다. 성질 급한 승객들이 소리를 쳤다. 경찰서에 또 전화해라. 다른 차로 갈아타게 해달라…

    할 말을 잃었다. 성추행을 당한 여자 승객이 흐느끼며 호소하고 있는데 제갈길 바쁜 승객들은 버스가 한동안 정차한 것이 못마땅한 것 같다. 종점까지 겨우 20분밖에 안 남은 거리인데…

    성추행을 당한 여자 승객이 소리를 친다. 성추행범 도망 못가게 잡아달라고. 그 아저씨(결혼 반지를 끼고 있었으므로 아저씨가 맞다), 술취했으니 이해해달라는 듯이 중얼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9403 후행 버스가 다가왔다. 승객들이 뒷차로 갈아타게 해달라고 소리쳤다. 기사 아저씨가 앞문을 열고 승객들이 우르르 내려갔다. 그 광경이 못마땅해 답답한 마음에 그냥 앉아있었다.

    그 순간, 갑자기 성추행한 아저씨가 줄행랑을 쳤다. 순식간이었다. 버스 앞자리에 있던 젊은 청년과 기사아저씨, 그리고 몇명이 쫓아갔다. 버스 앞문에 있던 요금 징수통은 쓰러졌다. 바쁜 승객들은 뒷차로 갈아타고,의분한 승객 몇명은 성추행범을 쫓아갔다. 그때까지 경찰은 오지 않았다. 신고한지 15분여 지날 때쯤이었다. 나와 다른 여자 승객만 남아 자리를 지켰다.

    기사 아저씨 자리에서 휴대폰이 울렸다. 분당 경찰서였다. 왜 안오냐고 물었더니 오고 있단다. 기다렸다. 오지 않았다. 20분 정도 지난 것 같다. 답답해서 내가 또 전화했다. 사고가 많아 늦다는 것이다. 범인은 이미 도망가고 승객들도 모두 사라졌다고, 어서 빨리 오라고 말했다.

    멀리서 기사 아저씨 혼자 걸어왔다. 놓쳤단다. 너무나 순식간에, 빨리 도망치는 바람에 도저히 잡을 수 없었단다. 그제서야 경찰이 도착했다. 자초지종을 말했다. 경찰은 인상착의를 물었다. 집으로 가다가 되돌아온 어떤 여자 승객이 인상착의를 답했다.

    베이지색 바지, 곤색 티셔츠, 건장한 체격, 네모난 얼굴, 찢어진 눈, 30대 후반의 나이, 결혼 반지 착용.

    성추행범을 잡으러 쫒아갔던 어떤 청년의 지갑이 차 안에 떨어져 있었다. 지갑을 경찰에게 넘겼다. 경찰은 인상착의를 말한 여자 승객을 경찰서로 데려갔다. 버스는 출발했다. 나와 또 다른 여자 승객만 태운 채.

    기사 아저씨가 말했다.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그때는 머뭇거리다 그냥 지나쳤다고. 딸을 키우는 입장에 이번에는 그냥 지나칠 수 없어 경찰에 신고하고 기다린 것이라고. 그런데 승객들이 내려달라고 보채는 바람에 놓쳐버렸다고. 답답하다고.

    나도 답답했다. 이미 늦은 시간, 늦어봐야 얼마나 더 늦는다고, 성추행 당한 사람이 눈앞에 있는 상황에서 제갈길 바쁘다고 소리치며 내려달라는 사람들이.

    “아저씨들, 딸이 이런 일을 당했다면 가만히 있겠습니까?”

    울먹이며 호소하던 그 아가씨의 말이 여전히 귓가에 생생하다.

    [제멋대로 주역 읽기] 1. 건 | 重天乾

    Posted on : 2007-06-07 | By : SON BYOUNGMOK | In : 짧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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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역에 대한 사전 지식은 다음 내용을 참조해 주세요.

    ☞ 주역 기초 강의 바로가기 (클릭)

    단전, 문언전 등은 생략하고 본문만 읽습니다.

    ■ 乾은 元코 亨코 利코 貞하니라

    “건(乾)은 크고 형통하고 이롭고 바르니라”로 읽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정이천(程伊川)이 이렇게 읽었습니다. 정이천(혹은 程子)은 주역을 의리적으로 해석했습니다. 왕필(王弼)도 이렇게 읽습니다.

    으뜸 원, 형통할 형, 이로울 리, 곧을 정. 이는 곧 봄·여름·가을·겨울을 뜻하기도 하고, 나고 자라고 거두고 사라지는 생장수장(生長收藏)의 인생이라 볼 수도 있습니다. 그 중 ‘원형’을 묶어 ‘생장’, ‘이정’을 묶어 ‘수장’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생장(生長)은 나서 자람을 말합니다. 생물학에서는 원세포에서 하나의 생물체가 완성될 때까지의 과정을 말합니다. 그야말로 왕성한 활동과 거침없는 질주의 시기입니다.

    수장(收藏)은 물건 등을 거두어서 깊이 간직하는 것을 말합니다. 유대인의 추수 기념일을 수장(收藏節)이라고 합니다. 무르 익어 그 결과를 거두는 때이지만 머지않아 사라질 때이기도 합니다.

    주역에는 앞으로도 원,형,리,정의 네 글자가 수시로 등장합니다. 그러나 그 뜻이 정확하게 어떠한 것을 의미하는지 문맥에 따라 해석할 수밖에 없는데, 초아 서대원 선생은 이를 특정 단계의 시간이라 고정하여 풀이하는 것이 편하다고 말합니다. 원 = 만물 창조 ~ 혼돈의 시기. 형 = 천지창조 ~ 성장의 시기. 리 = 결실과 수확의 시기. 정 = 소멸과 쇠퇴의 시기.

    “건(乾)은 크게 형통하고 곧음이 이로우니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주자본의(朱子本義>)에서 이렇게 읽습니다. 주자는 주역을 점서적으로 해석했습니다. 점괘를 쳐보니 건괘가 나왔다면, 본디 크게 형통할 괘인데, 그러나 바른 마음을 잃게 되면 이로울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 初九는 潛龍이니 勿用이니라

    1. 물에 잠긴 용이니 쓰지 말지니라.

    건괘의 첫번째 효(爻)입니다. 초구라고 일컫는 것은 첫번째(初) 효가 양(陽)이라는 뜻입니다. 양은 구(九), 음은 육(六)으로 표기하는데, 건괘는 모두 양이니 초구,구이,구삼,구사 등과 같이 모두 구로 표기합니다.

    물에 잠긴 용(潛龍)은 이 효의 상징입니다. 타로 카드를 뽑았는데 그 카드에 그려진 그림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쓰지 말라(勿用)는 것은 점(占)입니다. 아무리 용이지만 물속에 잠겨 있는데 쓸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아직 쓰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직 인격이 덜 갖춰진 사람이라는 뜻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인격이든 실력이든 아직 덜 갖춰진 때이니 섣불리 뜻을 펼치지 말 것이며, 이러한 사람을 쓰지도 말라는 뜻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물속에서 때를 기다리는 형상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조용히 때를 기다리며 내실을 기해야할 때입니다.

    ■ 九二는 見龍在田이니 利見大人이니라

    2. 용이 밭에 나타났으니, 대인을 봄이 이로우니라.

    견룡이라 읽지 않고 현룡이라 읽습니다.  ’볼 견’이 아니라 ‘나타날 현’입니다.

    드디어 용이 밖으로 나와서 보입니다. 그곳이 밭입니다. 물 밖으로 나온 용이 밭에 있습니다. 그런데 너무 오래 물속에 잠겨있었던 탓일까요, 용은 아직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대인(大人)을 만나야 이롭다고 합니다.

    제 아무리 용이라고 해도 위로 좋은 상사(또는 군주)나 아래로는 좋은 부하(또는 신하)를 얻어야 이롭습니다. 잠룡의 때를 보내고 땅위로 올라왔으니, 시간과 공간적 조건은 갖추어졌습니다. 그러나 아직 사람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모든 것을 갖추었다고 해도 도와줄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 결국 이롭지 못하다고 주역은 말합니다.

    ■ 九三은 君子-終日乾乾하야 夕’척’若하면 ‘려’하나 无咎-리라
    (웹에서 표기할 수 없는 한자는 그냥 음만 달았습니다.)

    3. 군자가 날이 마치도록 굳세고 굳세게 해서 저녁에 두려운 듯하면, 위태하나 허물은 없으리라.

    때를 기다려 능력을 쌓아 드디어 기회를 얻어 땅위로 올라와 좋은 사람까지 만났습니다. 이를 군자라 했겠지요. 그러나 그 군자는 하루종일 노력해야 합니다. 굳세게 굳세게 노력하고, 그러고는 저녁에 두려워합니다. 두려워한다는 것은 반성한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해도 아직 완전하지 못합니다. 여전히 위태롭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큰 허물은 되지 않습니다. 열심히 노력하고 반성을 하는 한.

    과도기입니다. 주역의 한 괘는, 작게는 6개의 효로 이루어져 있지만, 크게 아래와 위 두 개의 괘로 나눌 수 있습니다. 3효는 아래의 괘(내괘)에서 위의 괘(외괘)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효입니다.

    군자도 위태로운데 뭇사람들이야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사람 사는 세상이 모두 이러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낮에 노력하고 저녁에 반성할 줄 알면 위태하지만 그러나 허물이 없이 살 수 있지 않을까요?

    ■ 九四는 或躍在淵하면 无咎-리라

    4. 혹 뛰어 못에 있으면 허물이 없으리라.

    펄쩍 뛰었는데 못에 있습니다. 용이 한번 펄쩍 뛰면 하늘로 올라가야 하는데 아직 못에 있습니다. 좀 모자랍니다. 그러나 용기 내어 펄쩍 뛰어봐야 합니다. 그래야 올라가지요. 그러나 올라가지 못하고 다시 못에 떨어진다해도 허물이 없습니다.

    제3효와 이어서 읽어보면, 군자는 종일 노력하고 저녁에 반성하고, 더 높이 오르려 뛰어보기도 하고, 그래서 다시 제자리로 오더라도 허물이 없습니다. 성장과 도약을 위해 노력하는 때입니다. 비록 힘이 좀 모자라더라도 뛰어오르려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합니다. 힘과 추진력이 필요합니다.

    ■ 九五는 飛龍在天이니 利見大人이니라

    5. 용이 하늘에서 나니 대인을 만나봄이 이로우니라.

    드디어 하늘로 올랐습니다. 인생의 최상의 때를 만났습니다. 그러나 역시 무언가 부족합니다. 더 큰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하늘로 올랐다고 해서 최고가 된 것은 아닙니다. 능력은 최고일지 몰라도 더 큰 인물을 만나야 이롭습니다.

    건괘의 제5효는 주역 최고의 효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최고의 자리는 곧 몰락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경계하고 경계해야 합니다. 대인을 만나면 이로울 것이나 그렇지 않다면 장담하지 못합니다.

    ■ 上九는 亢龍이니 有悔리라

    6. 지나친 용이니 후회가 있으리라.

    너무 높이 올라갔습니다. 항(亢)은 높을 항자입니다. 올라가서는 안 될 곳을 올라갔습니다. 그러고나니 후회만 남습니다.
    비룡(飛龍)의 한계를 넘어서 교만하고 지나쳐 항룡(亢龍)이 되었으니 후회해도 늦습니다. 물러날 때를 알아야죠.

    ■ 用九는 見群龍호대 无首하면 吉하리라

    종합 : 뭇용을 보되 머리가 없으면 길하리라.

    제1효부터 6효까지 여섯 마리 용들이 날뜁니다. 잠룡과 현룡, 비룡, 항룡들이 떼를 지어 모여 있습니다. 그들을 보더라도 머리를 드러내지 말라고 합니다. 머리를 드러내지 말라는 말은 곧 머리를 숙이라는 말인가요? 겸손하라는 말이 아닐까요?

    여럿 중에 우두머리가 되지 말라는 말은 아닐 것입니다. 여럿 가운데 무조건 나서지 말라는 말도 아닐 것입니다. 다만 용구의 시대, 즉 여러 용들이 날뛰는 시대에 무턱대고 머리를 드러내지 말라는 뜻일 것입니다.

    대충 제멋대로 읽었습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조금씩 읽어볼 생각입니다.

    주역은 볼 때마다 조금씩 그 느낌이 다릅니다. 오늘은 이리 해석하고 내일은 저리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옛 글은 그대로인데, 그 글을 읽는 나는 오늘도 변합니다.

    일상의 작은 변화가 필요한 때

    Posted on : 2007-06-05 | By : SON BYOUNGMOK | In : 짧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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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시면 아직 어둡다. 5시면 이미 밝다. 한 시간을 사이에 두고 어둠과 빛의 세계가 나뉜다. 변화는 더딘 듯하지만 변화의 순간은 잠시다.

    5시에 대지산에 올랐다. 동네에 있는 작은 산이지만 새소리 힘차다. 숲에서 뿜어내는 새벽 공기가 산 아래의 그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작아도 산은 산이다.
    눈을 떠 숲속 공기를 마시고 새소리 들으며 녹음 속에서 하루를 시작하니 마음이 청결해진다. 대지산 정상 오두막에 누워 새소리 들으니 신선놀음 따로 없다.

    눈을 뜨면 으레 책을 펴거나 노트북을 켰다. 오늘은 옷을 갈아입고 집밖으로 나와 산에 올랐다. 변화가 필요한 때, 우선 나의 일상에 작은 변화를 가해본다.

    변화의 대상이 되는 것은 괴롭다. 이럴 땐 방향을 틀어야 한다. 반대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변화의 주체가 될 수 있다. 전환이 필요하다.

    욕망의 노예가 되기보다 내 삶의 주인이고 싶다.
    내 하고 싶은 대로 한다고 주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하고 싶다는 욕망이 과연 나로부터 비롯된 것인지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욕망의 노예라고 느껴질 때, 큰 변화가 필요한 때다.

    일상의 거미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느낄 때, 나를 진지하게 되돌아볼 때다.
    삶의 무게가 유독 무겁게 느껴질 때, 나를 반성해야 할 때다.
    삶의 무게는 내 삶이 방향을 잃거나, 자신감을 잃었을 때 더해진다. 내 변화의 속도가 나를 둘러싼 환경의 변화 속도에 뒤쳐질 때 심각하게 다가온다.

    6시가 되니 많은 사람들이 찾아든다.
    나는 내려간다.
    기분이 상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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